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신라시대 신문왕(神文王)에게는 두 왕자가 있었다. 임금 사후에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형제는 아름다운 산을 구경하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이들은 시종 1천명을 데리고 서라벌을 떠나 북쪽으로 유람을 떠난다.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 곳이 지금의 평창 오대산(五臺山). 두 왕자는 그만 부귀영화를 버리고 수려한 오대산에서 살고 싶었다. 삼국유사 보천, 효명 왕자의 설화는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신비스러움에 빠진 사연을 기록한 글이다. 형제는 각자 좋은 곳을 가려 암자를 지었다. 

신문왕이 승하하자 궁중에서는 행방이 묘연한 두 왕자를 찾아 나섰다. 대를 잇기 위함이었다. 신하들이 간신히 오대산 계곡에서 두 왕자를 찾았으나 보천태자는 울며 돌아가기 싫다고 애원했다. 신하들은 간신히 효명왕자를 설득해 서라벌로 돌아간다. 

오대산은 불가에서 문수보살이 산다는 성지다. 왜 오대산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일까. 일설에는 오대산과 더불어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어 이같이 불렸다는 설도 있다. 문헌 기록은 선덕여왕 때 자장 율사가 중국 산시성에 가서 오대산을 보았는데 모양이 비슷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 산의 상원사(上院寺)는 신라시대 가람이다. 비천상이 조각된 구리종은 국보(國寶)로 지정돼있다. 상원사는 또 조선 초기 세조의 참회수행으로 유명하다. 어린 단종을 폐위하고 죄 없는 신하들을 많이 죽인 세조는 그만 중병을 얻었다. 온 몸이 피고름으로 허는 병이었다. 세조는 월정사, 상원사 부처가 효험 있다는 말을 듣고 절에 가서 참회하려 했다.

상원사로 올라가는 도중 세조는 개울에서 등목을 했는데 마침 지나가던 어린 소년 하나가 다가와 등을 밀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세조의 피부병이 감쪽같이 나았다. 

세조는 상원사에서 동자상을 봉안하게 됐으며 이것이 또 국보로 지정된 문수동자상이다. 1983년 이 불상의 복장(服藏)에서 피고름이 홍건히 묻은 비단 옷이 발견됐다. 세조가 죄를 빌면서 피부병을 낫게 해달라고 봉안한 어의(御衣)였다. 

세조가 상원사를 찾았을 때 법주사에 있던 스승 신미대사(信眉大師)는 여러 날을 걸어 임금을 알현한다. 신미는 세종대왕과 더불어 한글을 창제한 주역으로 세조와는 월인석보(月印釋譜)를 함께 저술한 장본인이다. 먼 길을 걸어 발이 부르트고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신미의 깜짝 출현에 세조는 감동했으며 어명으로 월정사의 대대적인 중창을 지시했다. 

평창군의 산 계곡은 명적이 아닌 곳이 없다. 군청소재지인 평창읍 하리에서는 지난해 청동기 시대 유물인 비파처럼 생긴 동검(銅劍)이 찾아졌다. 대부분 서해지역에서 출토됐던 비파형 동검이 강원도 지역에서 출토된 것은 이례적이다. 

평창읍내 노산에는 고대 산성유적이 있다. 이 성은 노성(魯城)으로 기록되며 평창강이 굽이굽이 도는 노산 위에 축조돼 있다. 석재를 다듬어 비스듬히 들여쌓은 방식으로 보아 고구려시대의 성으로 보인다. 

노성은 세상 시름을 잊게 해주는 산인가. 세조때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던 강희맹은 노성에 올라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 (전략) …꿈속에는 아직도 파란 절벽을 기어오르는 꿈을 꾼다/ 백가지 시름을 노성의 봄에 흩어버리니/ 술 마시며 높은 소리로 담소하여 즐겨하노라 -

겨울철 인류의 스포츠제전인 평창올림픽이 개막돼 설경 평창에 성화가 타올랐다. 올림픽은 평화를 상징하는 축제다. 남북한도 단일팀 복장으로 경기에 참여하고 있다. 전쟁이 없는 평화는 남북한 주민은 물론 전 인류의 공통된 염원이다. 그런데도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 않고 개막식 하루 전날에도 평양에서 열병식을 거행해 뜻을 흐리고 있다. 선량한 남북주민들이 시름을 잊고 평화롭게 사는 날은 언제가 될까. 

보위 욕심마저 버리고 초연하게 산 보명태자, 자신의 과오를 진심으로 참회한 문수동자 앞의 세조, 백가지 시름마저 잊게 하는 아름다운 노산, 평창에 숨어있는 역사의 의미가 타오른 성화와 함께 가슴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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