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문구 놓고 줄다리기..큰틀서 美입장 관철
北 책임명시 못한 근본 한계..中.러시아 성명 동참 의미

(워싱턴=연합뉴스) 미국 유력 언론 월 스트리트 저널(WSJ)은 9일 유엔 안보리의 천안함 관련 의장성명에 대해 "한 달간의 줄다리기 끝에 중국의 입김이 들어가있지만, 미국에는 `언어학적 승리'(linguistic victory)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국제 정치현실을 감안한 `외교적 승리' 여부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성명문안을 놓고 팽팽히 맞섰던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를 감안할 때 최종 문안의 문구 하나하나를 수사적으로 분석해 보면 미국이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워싱턴 소식통은 `언어학적 승리'라는 평가에 대해 "중국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쳐 의장성명 문안에 북한의 책임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지만, 절묘한 문안 구성을 통해 사실상 북한의 책임으로 귀결되도록 했다는 판단에서 나온 평가"라고 설명했다.

천안함 의장성명 조율을 위한 중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뉴욕의 수전 라이스 유엔대사가 현장을 책임졌지만, 백악관이 막판 타결까지 문안을 일일이 챙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캐나다 토론토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북한을 감싸는 중국을 겨냥해 "자제력을 발위하는 것과 계속되는 문제에 의도적으로 눈감는 것은 다르다"면서 전날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에게 천안함 사태에 대해 "매우 직설적(very blunt)으로 말했다고 전하며 전례없이 강도높은 발언을 한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이 때문에 한국의 입장을 대신한 미국은 `북한의 책임'을 흐리는 문안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처음부터 중국과의 협상에 임했다는 후문이다.

이번 의장성명의 핵심은 5, 6, 7항으로 압축된다. 이들 각 항목의 표현과 수위를 놓고 미.중 양국은 끊임없이 설전을 주고받으면서 밀고 당기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5항(안보리는 북한이 천안함 침몰에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 한국 주도하에 5개국이 참여한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에 비춰(in view of)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과 7항(이에 따라(therefore), 안보리는 천안함 침몰을 초래한 `공격'을 `규탄'한다)라는 문안은 인과적으로 북한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그 성격을 `공격'(attack)이라고 규정하고, `규탄'(condemn)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의장성명의 핵심이다.

한국과 미국의 뜻이 담긴 표현이다.

하지만 이들 문구는 `공격'이나 `규탄'이라는 표현 삽입을 반대하는 중국의 벽에 막히는 진통이 있었다. 중국은 한사코 천안함 침몰을 `사건'(incident 또는 event)으로 규정하는 영문 표현을 삽입하려 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협상은 교착됐고, 나아가 중국은 "천안함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북한의 주장을 의장성명에 병기할 것도 요구하면서 진통이 거듭됐다.

지난 5월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중국을 방문하면서까지 `천안함 연루'를 부인한 상황이어서 중국은 북한 입장을 반영해 의장성명의 대북 책임 톤을 묽게하려 안간힘을 썼다.

결국 이러한 중국 주장이 의장성명 6항(안보리는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하는 북한의 반응, 그리고 여타 관련 국가들의 반응에 유의한다(take note of))라는 문구로 반영됐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 논의 과정에 정통한 전문가는 "안보리 협의때 사용되는 `take note of'라는 문구는 유엔 논의과정에서 이런 저런 주장이 개진되면 가치판단이나 평가없이 속기록에 올리듯이 명기하는 중립적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때문에 중립적 표현이 사용된 6항이 있다고 해도 북한의 천안함 책임 결론을 내린 합조단 조사를 바탕으로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는 문구로 가치판단이 들어간 제5항의 메시지를 상쇄시킬 수준의 문구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만약 제5항 문구가 `안보리는 북한이 천안함 침몰에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 민군 합동조사단의 결과에 유의한다'(take note of)라는 식으로 낙착됐다면 실질적으로 남.북한 주장이 똑같이 병기되는 것으로서, 한국과 미국의 외교적 패배로 기록될 뻔했다는 것.

중국은 이 같은 의견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은 `불가' 입장을 고수했고 막판에 중국이 양보함으로써 9일 오전 안보리 전체회의에서 채택된 최종 의장성명 문안으로 귀착됐다.

이처럼 의장 성명의 표현, 문구를 놓고 치열한 기싸움이 있었고, 전체적으로 미국의 의도가 관철됐다는게 의장성명을 놓고 `언어학적 승리'라고 평가하는 근거이다.

라이스 유엔주재 미국대사도 "이번 성명에서 주시해야 할 것은 공격이라는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공격'이라는 단어는 영문학자가 아니더라도 중립적인 단어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말했고, "또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와 그 외 다른 사항들을 취급하는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으며 공격을 규탄한다는 점이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의장성명이 북한의 천안함 공격 규탄 취지는 살렸지만, 직접 북한을 책임주체로 적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하다는 데는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워싱턴 소식통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버티고 반대하는 상황에서 비롯된 국제적 현실의 한계"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다만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자 국제역학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성명은 기대 이상의 결과"이며 "한국과 미국이 향후 양자적, 독자적 대북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번 성명이 표결로 가지 않고, 거부권을 가진 중국과 러시아까지 최종 문안에 찬성토록 해 국제사회의 콘센서스를 도출하는 모양을 취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미국내에서는 적극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백악관이나 미 국무부가 이날 안보리 의장성명에 대해 "북한에 대한 만장일치 규탄"이라고 규정하고 논평한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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