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부고속도로 신갈 분기점 (자료제공: 국토해양부)
역경 딛고 일궈낸 대역사… 4대강 사업 논란과 비슷

[천지일보=김두나 기자] “2년 5개월여에 걸쳐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된 1970년 7월 7일, 젊은 도로 기술자들이 부동자세로 선 채 눈물을 흘리는 동안 박정희 대통령도 눈물을 흘렸다.”

지난 7일 경부고속도로가 개통 40주년을 맞았다. 경부고속도로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산업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한국을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5위의 경제대국으로 견인하는 데 한 축을 담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건설계획을 발표했던 1967년 3억 달러에 불과하던 수출액은 40년이 지난 현재 3600억 달러를 돌파했고 100달러 수준이었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를 내다보고 있다.

◆‘극심한 반대’ 험난한 과정

경부고속도로는 착공 당시부터 야당과 언론, 학계의 극심한 반대와 우려에 부딪혔다. 이들 반대세력이 주장한 내용은 ▲예산낭비 ▲지역 편중 ▲시기상조 ▲투자순위 조정 ▲졸속 추진 및 절차 위반 등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42달러에 불과했던 1967년 당시 국가 예산의 23.6%인 429억 7300만 원을 투입하는 대형국책사업이었기에 반대는 더욱 심했다. 또 당시 자동차 등록대수가 5만 대에 불과했기 때문에 “한국의 모든 차들을 줄 세워봐야 다닐 차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공사가 시작된 후에도 고난과 역경은 계속됐다. 자본도 장비도 기술도 부족했기에 대부분 군장비를 활용했으며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겨울에는 언 땅위에 짚을 깔고 휘발유를 뿌려 땅을 녹인 뒤 지반을 다졌다.

또 공사 중에 발생한 인명피해자 수만 77명에 이를 정도로 경부고속도로 건설 사업은 단순한 도로 개혁이 아닌 국민의 피와 땀이 섞인 대역사였다.

한국산업개발연구원 백영훈 원장은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사람들이 반대했던 모습과 현재 국책사업으로 추진 중인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찬반 논란이 비슷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백 원장은 “좁은 국토를 활용하려는 국가 전략을 국민들이 오해하고 정치적인 이슈로 만드는 등 경부고속도로 대동맥을 뚫을 당시의 고민을 다시 생각나게 한다”며 “그러한 역사가 이렇게 또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비용절감 효과 연간 13조 원

부족한 자본과 기술력의 한계, 여론의 반대 등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1970년 완공된 경부고속도로는 단순히 서울에서 부산까지 소요시간을 단축(15시간 이상 → 5시간 35분)시킨 것을 뛰어넘어 사회 전반에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원활한 물류 수송으로 경공업 중심이었던 산업구조는 철강·석유화학·자동차 등 중화학공업으로 이동했고 인접 도시의 발전, 지방 공업단지 연결 등으로 국토 균형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백승걸 도로교통연구원 교통정책팀장은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인한 비용절감 효과는 연간 13조 원에 달한다”며 “전체 고속도로의 경우에도 시간가치 비용 32조 원, 차량통행 비용이 4조 6000억 원으로 총 36조 6000억 원의 절감효과를 낸다”고 말했다.

시간가치 비용은 고속도로 통행으로 인한 시간단축비용이며 차량통행 비용은 기름값, 자동차 감가상각비 등이 해당된다.

고속도로 건설은 또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세계 5위로 발전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경부고속도로 개통 당시 자동차 보유대수는 13만 대에 불과했으나, 2009년 현재 자동차 보유대수는 1733만 대에 이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경제·사회적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 탄생한 경부고속도로는 전국을 일일 생활권으로 바꿔 놓았다”며 “경부고속도로는 경제 대동맥이자 경제발전의 아이콘으로서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게 한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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