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강자 ‘휴지로 만든 드레스(Paper Tissue Dress, 1969, courtesy of the artist, 왼)’. 정강자 ‘투명 풍선과 누드(Transparent Balloon and Nude), 1968, 사진, 강국진·정강자·정찬승, courtesy of the artist)’. (제공: 아라리오갤러리)
정강자 ‘휴지로 만든 드레스(Paper Tissue Dress, 1969, courtesy of the artist, 왼)’. 정강자 ‘투명 풍선과 누드(Transparent Balloon and Nude), 1968, 사진, 강국진·정강자·정찬승, courtesy of the artist)’. (제공: 아라리오갤러리)

 

 

‘정강자: 마지막 여행은 달에 가고 싶다’전

서울·천안 전시관 동시 개막

이번 전시 준비 중 작가 별세

족적 담은 회고전으로 마련

회화·조각 등 60여점 전시

 

국내 아방가르드 미술의 대모

1968년 ‘투명풍선과 누드’

파격적 행위예술로 관심 집중

평생 ‘한계의 극복·해방’ 탐구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1968년 5월 30일 서울 종로구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해프닝 쇼가 벌어졌다. 러닝셔츠와 반바지만을 입은 한 여성이 등장하자 두 남성은 여성의 옷을 찢고, 투명한 풍선을 붙였다. 두 남성이 이내 풍선마저 마구 터뜨리고 나니 여성의 상반신에는 아무것도 걸쳐지지 않았다. ‘투명풍선과 누드’라는 제목의 이 퍼포먼스에는 청년작가병립회 소속의 정강자(당시 나이 25세) 작가와 강국진, 정찬승 작가가 참여했다.

남성 중심적인 세계관에서 처음 벌어진 누드 퍼포먼스인 ‘투명풍선과 누드’는 미술계와 사회 전반에 걸친 부조리에 여성해방을 추구하는 행위예술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퍼포먼스를 기이한 행위로 여기던 시절이었고, 사람들은 작가의 의도를 궁금해하지 않고, 작가를 관심에 목매는 사람으로만 취급했다.

1966년 홍익대학교 회화과 4학년 실습실에서 정강자의 모습. (제공: 고 정강자 유족)
1966년 홍익대학교 회화과 4학년 실습실에서 정강자의 모습. (제공: 고 정강자 유족)

50년 전 파격적이고 과감한 행위예술로 파문을 일으키고, 지난해 7월 지병으로 갑작스럽게 별세해 슬픔을 안겨준 고 정강자 작가(1942~2017)의 ‘정강자: 마지막 여행은 달에 가고 싶다’전이 마련됐다.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대모로 현대 전위예술사의 큰 발자취를 남기고, 평생 ‘한계의 극복’과 ‘해방’ 이라는 주제를 탐구해온 정강자의 타계 이후 열리는 첫 전시다.

이번 전시는 1년 전부터 작가와 함께 준비하던 전시지만 작가가 별세하면서 유작전이 됐다. 아라리오갤러리는 한국 현대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의 생을 기리고 50여년간의 화업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서울과 천안 전시관을 동시에 열었다. 서울 전시관에선 2월 25일까지, 천안 전시관에선 5월 6일까지 진행된다.

정강자 ‘억누르다(To Repress, 1968, cotton, steel pipe, 250 x 215 x 95, 위)’. (제공: 고 정강자 유족) 정강자 1968년작 ‘억누르다’를 아라리오갤러리가 재현한 작품(아래).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9
정강자 ‘억누르다(To Repress, 1968, cotton, steel pipe, 250 x 215 x 95, 위)’. (제공: 고 정강자 유족) 정강자 1968년작 ‘억누르다’를 아라리오갤러리가 재현한 작품(아래).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9

전지영 아라리오갤러리 큐레이터는 “지난해까지 열정적으로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전시를 꾸리도 있던 찰나에 작가님이 별세하셨다. 정강자 작가는 197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였음에도 실험미술에 대한 기여도가 연구되지 않았고, 여성의 신체를 차용한 작업에 대해 선정적인 시각을 감내하는 등 이중 소외에 시달렸던 작가”라며 “작가가 타계하기 전부터 함께 준비해왔던 만큼 회고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갤러리는 서울 전시관에 대표작을, 천안 전시관에 최근작과 아카이브 자료를 배치함으로써 한국 현대 미술사 내에 특수한 맥락을 점거하고 있는 고 정강자 작가의 화업 전반을 미술사·사회적으로 균형 있게 재조명한다. 작품은 회화와 조각 등 모두 60여점이다.

정강자 ‘명동(Myeong-Dong, 1973, oil on canvas, 162.2x130.3)’.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9
정강자 ‘명동(Myeong-Dong, 1973, oil on canvas, 162.2x130.3)’.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9

정강자는 1942년 경상북도 대구시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키스미(1967)’와 같은 파격적인 조형작업을 포함해 ‘투명풍선과 누드’ ‘한강 변의 타살(1968)’ ‘기성 문화예술의 장례식(1970)’ 등과 같은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그는 이와 같은 행보를 통해 자신이 마주했던 여러 경계와 틀을 해방하고자 했으나, 여성의 신체를 드러내는 작업에 대한 선정적인 시선을 감내해야만 했다.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1층은 정장자의 아카이브 자료실로 꾸며졌다. 유족이 제공한 정강자의 신문기사와 퍼포먼스 사진, 기고문 등이 원본 그대로 전시돼 있으며, 한쪽 벽면에는 작가의 생전 활동영상이 상영된다.

정강자 ‘사하라(The Sahara, 1989, oil on canvas, 162.2 x 130.3).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9
정강자 ‘사하라(The Sahara, 1989, oil on canvas, 162.2 x 130.3).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9

전시는 지하로 이어진다. 지하에는 작가의 50년사를 한 공간에서 구현해내기 위해 시대별 대표작 11점을 선정해 전시했다.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1층 사진 속에서 봤던 ‘억누르다(1968)’가 재현돼 있어 눈길을 끈다. 굵은 쇠파이프가 폭신한 대형 목화솜 한 가운데를 짓누르고 있다. 작가는 옷이나 침구류에 사용되는 솜이 여성의 역할과 맥락에 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솜과 철 상반되는 두가지 재료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당시의 성별 이데올로기와 성 정치의 역학관계를 유희하고 있다. 본래 작품은 사라졌으나 작가의 의지에 따라 아라리오갤러리가 다시 만들었다.

퍼포먼스로 많이 알려졌지만 그는 ‘명동(1973)’ 등 억압받았던 한국 여성의 주체의식을 드러내는 회화작업을 이어왔다.

1970년 첫 개인전인 ‘무체전’에서 강제 철거당하는 일을 겪은 후 정강자는 1977년 싱가포르 이주를 시작으로 1990년대까지 남미 등을 비롯한 세계 오지를 여행하며 국내 일간지에 여행기를 연재했다.

정강자 ‘한복의 모뉴먼트(Monument of Hanbok, 1998, oil on canvas, 162.2 x 130.3). (제공: 아라리오갤러리)
정강자 ‘한복의 모뉴먼트(Monument of Hanbok, 1998, oil on canvas, 162.2 x 130.3). (제공: 아라리오갤러리)

그러면서 외국문화와 작업 스타일을 받아드리게 된 정강자 작가는 이국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 계속 고민하고 노력했다. 이는 ‘환생(1985)’ ‘사하라(1989)’ 등의 작품을 통해 드러난다. 화려한 색감과 자유로운 주제, 다양한 표현법은 이분법적인 경계선을 넘으려던 작가의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오지 여행을 마친 그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추상적 형태를 이용한 회화 작업에 몰두했다. 한국의 전통문화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고 느꼈던 그는 한복 치마를 “수천 년을 남성 우월주의의 지배에서 억압받고 유린당해온 우리 여인들의 깃”이라고 말하며 ‘한복의 모뉴먼트(1998)’라는 작품을 내놨다. 오래도록 한국 여성의 가슴을 졸라맨 한복 치마는 그의 작품에서 끈이 풀린 채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기도 하고, 산처럼 쌓여 커다란 기념비를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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