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대한민국이 이번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당초 목표를 달성했고 덕분에 국민들이 행복했다. 분명한 승전이었다. 이긴 자들에게는 두둑하게 상을 내리는 것이 마땅하다. 포상금은 당연하고 드높아진 명예와 빛나는 자부심은 덤이다. 

이번 월드컵에 참가한 병역 미필 선수들에게 ‘병역 면제’라는 선물이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대한축구협회 조중연 회장이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했고, 정몽준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도 힘을 보태고 있다. 허정무 감독도 월드컵 이전부터 16강에 진출하면 군대를 면제시켜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게임’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라의 가치를 높이고 국민들의 사기를 끌어올린 공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므로 병역 면제가 당연하다는 의견 못지않게, 반대의 목소리 또한 만만찮은 탓이다.

스포츠 분야의 ‘병역특례’는 1973년 ‘문화 창달 및 국위선양’을 목적으로 처음 도입됐다. 이후 1984년과 1990년 기준이 변경, 강화돼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병역 특례를 받으려면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의 성적을 거두어야 한다.

2002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4강에 오르자, 월드컵축구 16위 이상이면 병역특례를 준다고 규정을 바꾸었고,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그해 8월 아시안게임을 앞둔 국가대표 선수들은 훈련에 불참하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축구나 야구 같은 인기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기다렸다는 듯이 병역 면제 요구가 쏟아지고 논란이 인다. 작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도 그랬다. 하지만 같은 스포츠 분야라 할지라도 인기 종목과 그렇지 않은 종목 선수들을 공평하지 않게 대접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다른 분야에서 똑같이 ‘국위를 선양’하고서도 병역 면제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국민들이 병역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병역의 의무가 공평하지 않게 지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대한민국 남성들은 국방의 의무가 신성하다고 믿으며(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어 하며), 때로는 목숨을 걸고 수행하지만, ‘신성한’ 의무를 ‘더럽게’ 저버리는 소수의 그들이 있다는 것 역시 구역질나는 우리들의 현실이다.

대통령과 그 자식들이 당당하게 군복무를 했다는 소식도 잘 들어보지 못했고, 소위 성공하거나 출세했다는 그들과 돈 많은 그들 혹은 그들의 자식들 누구나 군대에서 ‘짬밥’을 먹고 보초를 서며 나라를 지킨다고 우리들은 믿지 못한다. 천안함에서 수몰된 장병들 모두 대한민국의 평범한 보통 가정의 아들들이었다.

병역 면제를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돈과 권력 어느 것도 변변하게 가지지 못했거나 국가대표가 될 정도로 출중하게 축구나 야구를 잘 하지 못하면, 군대를 안 갈 도리가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서는 안 된다. 군대는 소위 ‘루저’들이 가는 곳이 아니다. 수많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그들이 ‘국방부 시계’에 걸어 두는 그 시간 역시 소중하고 귀하다.

국방의 의무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공평하게 져야 한다는 공감이 우선 필요하다. 스포츠로 나라를 빛낸 그들에게 면제의 특례를 주기보다는 복무 방식이나 시기의 탄력적 운용으로 그들 역시 ‘신성한’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신성한’ 의무를 다했거나 수행중인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들에 대한 예의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