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생업 - 윤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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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

윤효(1958~  )
 

종로6가 횡단보도
원단두루마리를 가득 실은 오토바이들이
숨을 고르고 있었다.

신호등이 울렸다.

장애물을 요리조리 헤치며
동대문시장 안 저마다의 결승선을 향해
순식간에 사라졌다.

좀처럼 등위를 매길 수 없었다.

모두 1등이었다.
 

[시평]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일을 우리는 다소 다른 이름을 붙여 부르기도 한다. ‘직업(職業)’이니, ‘생업(生業)’이니 하는 말이 그것이다. ‘직업’이라는 말에는 ‘자신이 맡은 바 일’이라는 ‘책무’가 강조돼 있다. 이에 비해 ‘생업’은 ‘살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는 ‘삶의 절박함’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어쩐지 ‘직업’이라고 부르는 것과 ‘생업’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어감의 차이가 꽤나 큰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위해 일을 한다. 범박하게 말해서 하루 세 끼를 위해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 이 세 끼를 위해 우리 모두는 치열하게 일에 매달리기도 한다. 종로6가면, 동대문 시장, 광장시장 등지에 있는 많은 의류제조 업체들이 자리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 오면 의류원단을 잔뜩 실은 오토바이들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오토바이가 뒤쪽으로 쏠릴 듯이 원단들을 잔뜩 싣고, 힘겹게 이들 오토바이를 몰아야 하는 사람들. 이들을 보면, 직업이라는 말보다는 정말 생업이라는 말이 더 실감나게 떠오른다. 이들 오토바이들은 경주선 앞에 선 주자(走者)들 마냥, 신호등 앞에 숨을 고르고 서 있다. ‘땅’ 하고 총소리가 들리면 이내 뛰쳐나갈 그러한 태세로. 그러나 이들의 생업에는 등위(等位)를 매길 수가 없다. 생업을 위해서는 하는 그 모든 일들은, 그 모두가 실은 일등이기 때문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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