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톡에서 동지들과 찍은 사진, 1920년(앞줄 왼쪽부터 김규면, 장병태, 이홍파, 손두현, 뒷줄 왼쪽부터 김병화, 김일수) (출처: 천안 독립기념관)
블라디보스톡에서 동지들과 찍은 사진, 1920년(앞줄 왼쪽부터 김규면, 장병태, 이홍파, 손두현, 뒷줄 왼쪽부터 김병화, 김일수) (출처: 천안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2월 독립운동가 선정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중국과 러시아를 누비며 무장투쟁한 대한신민단 단장 김규면 선생이 2월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7일 천안 독립기념관에 따르면, 김규면 선생은 1880년 함북 경흥에서 태어났다. 1900년 초 서울로 올라와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했으나, 함경도 출신들을 차별하는 일제의 정책으로 무관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생업을 위해 이주한 원산에서 캐나다 출신 선교사 펜윅을 만나 기독교에 입교했다.

1907년 가족들과 중국 훈춘으로 망명했다. 대한기독교회 소속 목사로 만주와 연해주를 오가며 선교활동을 펼쳐 나가는 한편 이동휘·김성무 등과 함께 동림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했다.

1915년 대한기독교회가 일제의 종교탄압에 굴복하자 ‘대한성리교’를 만들었고, 1919년 3월 2일 대한성리교 교인들을 중심으로 대한신민단을 창설했다.

1920년 대한신민단을 이끌고 봉오동전투에 참여했고, 1921년에는 대한의용군사회 고문으로 임명돼 러시아 이만전투에 참전했다.

1922년 러시아 정부가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한인무장부대를 해산시키자 김면규 선생은 중국 상하이로 건너왔다. 1924년 4월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윤자영 등과 함께 상해청년동맹회를 조직하고 잡지 ‘한인청년’을 출판했다.

1924년 5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총장 대리로 임명돼 러시아 정부에 자금 지원 요청을 교섭했다. 1925년 사회주의자동맹을 조직해 독립운동 세력들의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

1927년 장제스가 사회주의자를 탄압하자 블라디보스톡으로 건너가 동양서적 판매원으로 일하며 연해주 지역 빨치산 위원회를 지원했다. 1933년 모스크바로 이주했으며 1969년 향년 88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적을 기려 200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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