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지방선거 준비를 위한 정당 지도부의 발걸음이 바쁜 가운데 여당 지도부가 신바람을 내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이 매주 조사·발표하는 정당지지도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는데다 더불어민주당의 장기집권론이 당내에서 재점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교체 이후 민주당 중진들이 끄집어냈던 ‘20년 장기집권론’이 주춤하더니만 최근에는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당 싱크탱크를 이끌고 있는 김민석 민주연구원장이 다시 장기집권 플랜을 가동시키고 있는바 장기집권론의 필수적 전제가 오는 지방선거의 압승이라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는 중이다. 

정당의 목적이 집권에 있는 것이 분명하므로 어느 정당이든 한번 잡은 권력을 쉽사리 타 정당에게 내주려 하겠냐마는 집권당 지키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난 정부를 이끈 집권여당, 새누리당의 국정 실패를 거울삼아 지난해 8월 민주당에서는 계속·연속 집권 플랜을 구상하면서 당 역량 강화대책으로 당내 혁신기구를 만들었다. 이 혁신기구에서는 당을 확장시켜 나가면서 국민의 정당으로 거듭 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는데, 주안점이 바로 ‘100년 정당’ 구상이다. 

우리나라 정당사가 외국에 비해 일천한 입장에서 ‘100년 정당’은 민주당의 염원일 뿐만 아니라 각 정당이 추구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목표대로 실현되기가 쉽지는 않다. 우리나라 정당 중에서 단일 정당명으로 가장 오래된 정당은 민주공화당이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잡기에 성공한 군부는 1963년 2월부터 1980년 10월까지 17년 넘게 집권하면서 민주공화당의 기치를 떨쳐왔다. 자유당도 10년 가까이 집권 정당이 됐지만 5년 이상 유지된 정당이 흔하지는 않다. 

얼마 전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정의당이 원내정당 가운데 당명이 가장 오래된 정당이라 소개하면서 5년이 됐다고 자랑스럽게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당명을 바꾸지 않으면서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거라 말했는데, 국회의석수에서는 다섯 번째지만 당명 역사를 치면 1위이니 자랑할 만도 하다. 정의당의 역사를 보면 2013년 7월 21일 종전의 진보정의당에서 당명을 변경했으니 역사로 치면 4년 7개월째이다. 5년이 채 안된 정당이 우리나라 원내정당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는 것은 정의당 이름에 관계없이 한국정치의 부끄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정당민주주의를 표방해온 미국·영국에서는 정당의 역사가 길고, 단일정당으로 100년 이상 명성을 떨치고 있으니 민주주의가 잘 되고 있다는 증거다. 미국의 민주당은 자유주의 성향을 기조로 1828년 창당돼 현재에 이르고 있으니 189년이 됐고, 보수주의 색채가 강한 공화당도 1854년 7월에 만들어졌으니 163년이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영국 정당의 역사도 전통에 빛난다. 중도우파 성향의 보수당이 1912년 창당됐고, 중도좌파인 노동당이 1900년에 창당됐으니 양당은 100년 넘게 같은 이름으로 정치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정당을 창당하고 명칭을 변경하는 게 마치 장사가 잘 안 되는 가게가 폐점·개업을 번갈아하면서 업종과 간판 이름을 바꾸는 것과 흡사하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에서 비롯된 ‘미래당’이라는 신당이 산통(産痛)을 앓고 있는 가운데, 통합 반대파들이 반기를 들면서 민주평화당을 만들기로 했으니 기존정당들이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과정에서 정당법상 유사명칭의 사용금지를 피해가면서 정당 이름을 잘도 짓고 있다. 

한국에서 정당 이름이 5년을 넘기지 못하고 바뀌는 현상은 정권교체 또는 공직선거의 영향이 크다. 선거에서 패하게 될 경우 당내에서 책임의 목소리가 크기 때문에 선거를 지휘했던 지도부 등 주류세력들은 책임 통감 차원에서 2선으로 물러앉는 것이 상례가 돼왔다. 또 창당이 될 때에도 새로운 이슈로 국민들의 관심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당명에 신경을 쓰는 형편이니, 정당들은 환골탈태하기 위해서는 당명 변경을 능사로 알아왔던 것이다.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당에서는 인재 영입으로 필승 전략을 짜는 등 전의가 번득인다.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원내정당인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합당돼 새로 선보일 미래당, 합당 반대세력인 민주평화당, 정의당과 함께 원외정당들이 격전의 한판을 벌일 것으로 보이지만 선거 후의 판도가 어찌될지 속단할 수 없다.  

정당은 대의민주주의에서 현실정치를 관장하고 있기에 국민의 건전한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는 결사체로서 현대정치를 이끌어가는 핵심 역할을 한다. 좋은 정강 정책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정당이 많을수록 한국정치가 발전될 수 있을 터에, 당명 그대로 오래 지속되는 정당을 국민은 원한다. 정당정치의 기반이 척박하고 선진정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풍토에서 100년 정당은 그림의 떡이다. 10년이라도 존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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