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복 동상과 서복10경 스토리텔링 코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
서복 동상과 서복10경 스토리텔링 코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

서복 흔적 남아있는 서귀포
전시관람·공원산책 서복10경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천혜관광명소가 많은 제주도 서귀포시. 약 2200년 전 중국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의 명을 받고 불로초를 찾으러 왔던 서복 일행이 여기서 머물다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라는 의미로 지어진 지명이름 서귀포(西歸浦)다.

서귀포 일대는 ‘70리로 표현’할 만큼 해양을 향해 해안절벽이 솟아있는 데다 절벽을 따라 정방·천지연·천제연 등의 폭포가 집중 분포해 제주도 관광지역의 중심을 이룬다. 특히 정방폭포에는 서복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 입구에는 서복전시관이 있다. 서귀포의 지명 자체에 서복의 흔적이 담겨있을진대, 서귀포를 찾았다면 최소 한 번은 이곳을 둘러봐야 하지 않을까.

서복이 바위벽에 ‘서불과지’ 마애명을 적고 간 정방폭포. 동양 유일의 해안폭포로 폭포수가 바다로 직접 떨어진다. 마치 하늘에서 하얀 비단을 드리운 것 같다 하여 정방하포라고도 불린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
서복이 바위벽에 ‘서불과지’ 마애명을 적고 간 정방폭포. 동양 유일의 해안폭포로 폭포수가 바다로 직접 떨어진다. 마치 하늘에서 하얀 비단을 드리운 것 같다 하여 정방하포라고도 불린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

그럼 정방폭포와 서복전시관에서 잠시 서복 일행이 되어 그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토록 찾고자 했던 불로초 여행을 함께 떠나보자. 절벽 아래 양 갈래로 물줄기가 떨어지며 시원스럽게 내는 폭포소리가 일품인 정방폭포. 동양 유일의 해안폭포로 폭포수가 바다로 직접 떨어진다. 마치 하늘에서 하얀 비단을 드리운 것 같다 하여 정방하포라고도 불린다.

그 옛날 이곳 제주에 불로초가 있을 것으로 믿고 영주산(한라산)으로 찾으러 왔다가 끝내 못 찾고 갔지만, 한동안 이 정방폭포의 빼어난 경관에 혀를 차며 눈을 빼앗겼을 서복이 짐작된다. 바위벽에는 서불과지(徐市過之: 서복이 이곳을 지나가다)라는 마애명이 적혀 있다.

정방폭포를 올라와 서복전시관으로 가는 길 양 옆에는 돌담으로 되어 있는데, 알듯말듯 아리송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전시관은 서복10경을 스토리텔링으로 구성해 전시관람과 공원을 산책하며 서복의 여정을 느끼도록 했다.

서복2경 서귀기원. 서복 일행이 불로초를 찾아 떠나온 여정이 비석에 그려졌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
서복2경 서귀기원. 서복 일행이 불로초를 찾아 떠나온 여정이 비석에 그려졌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

서복전시관 마당 입구에 있는 것이 서복1경 ‘서불과지(徐市過之)’다. 중국 진시황이 서복에게 영주산(한라산)에 가서 불로초를 캐어오도록 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정방폭포 바위벽에 새긴 ‘서불과지’ 글자가 그대로 재현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서복2경은 ‘서귀기원(西歸起原)’으로 서귀포의 지명 유래에 대한 것으로 서복이 정방폭포에 새긴 서불과지를 각 비석에 그림 이야기로 풀어냈다. 비석에는 서복 일행이 불로초를 찾아 이곳을 떠나온 여정으로 ▲진시황에게 진언하다 ▲1천명의 소년과 소녀를 선발하다 ▲고향에서 출발하다 ▲배를 타고 동쪽으로 가다 ▲영주(제주)에서 불로초를 찾다 ▲서복이 지나가다 등 6가지 이야기로 구성됐다.

서복전시관 전경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
서복전시관 전경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

서복 3경은 ‘동남동녀(童男童女)’로 서복이 불로장생의 약을 구하기 위해 1천명의 소년·소녀를 선발하고 각 분야의 백공 등 3천여명을 이끌고 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서복전시관은 앞면과 뒷면에 각각 동남동녀 1천여명을 기리는 1천개의 기왓장을 사용해 건립했다고 한다.

서복4경 장군수복(將軍壽福)은 서복전시관 전시실 안에 진시황릉 병마용갱을 실제와 비슷하게 만들었다. 입구에 세워진 장군은 그 손을 만지며 소원을 비는 방문객이 많아지면서 행운의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서복4경 장군수복. 입구에 세워진 장군은 그 손을 만지며 소원을 비는 방문객이 많아지면서 행운의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
서복4경 장군수복. 전시실 입구에 세워진 장군은 그 손을 만지며 소원을 비는 방문객이 많아지면서 행운의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
 

전시실에는 중국의 신선사상과 고구려 벽화 등에 나타난 한국 신선사상을 비교하고 있으며, 서복의 1, 2차 동도(東渡) 여행 이야기를 그림 해설과 모형으로 설명했다. 여기서는 서복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돼있다.

설명에 따르면 서복은 진나라가 통일하기 전 제나라에서 태어나 신선사상 영향을 받으면서 천문, 의학, 점복, 신선술을 연구하는 자였고 최종 정착지로 알려진 일본에서 야오이문화를 창달시켜 일본경제사회의 발전을 촉진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서복을 ‘문화의 사자’라고 칭했는데, 눈길이 가는 것은 서복이 한민족 뿌리 동이족의 계열인 서국의 후예로 전해지고 있다는 부분이다. 서복이 우리 한민족의 선조일 수도 있는 셈이다.

서복전시관 전시관람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
서복전시관 전시관람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
서복의 동도여행을 모형으로 제작돼 전시된 모습. 서귀포 정방폭포 앞 해안에 도착한 모습이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
서복의 동도여행을 모형으로 제작돼 전시된 모습. 서귀포 정방폭포 앞 해안에 도착한 모습이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

서복5경은 승진대로(昇進大路)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2005년 절강성 당서기 시절 이곳 전시관을 찾아 방명록에 서명했는데, 이처럼 서복전시관을 방문했던 중국 관료들이 승진이나 연전을 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시진핑 주석이 당시 방명록에 서명했던 글자가 보관돼 있다.

서복6경부터는 공원을 산책하는 구간이다. 서복6경은 용왕해송(龍王海松)으로 해안절벽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가 가지 절반이 바다를 향하고 있다. 이는 용궁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상징한다는 의미로 용왕해송이라 불린다. 해송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이 일품인 장소다. 서복7경 해파낙청(海波樂聽)은 해안절벽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가장 청명하게 들리는 명소다.

서복6경 ‘용왕해송’으로 마치 소나무가 용궁을 그리워해 가지 절반을 바다로 향하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나무 가지 너머로 보이는 섬이 마치 불로초가 닿을 듯한 곳에 있을 것 같았지만 찾지 못한 서복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
서복6경 ‘용왕해송’으로 마치 소나무가 용궁을 그리워해 가지 절반을 바다로 향하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나무 가지 너머로 보이는 섬이 마치 불로초가 닿을 듯한 곳에 있을 것 같았지만 찾지 못한 서복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

서복8경은 일등천경(一等天景)으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하늘 빛깔이 최고의 푸르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서복9경은 황근만화(黃槿滿花)로 제주에만 자라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종인 노란무궁화라 불리는 황근이 있는데, 여름 때 이곳에서 만개한다. 마지막 서복 10경은 장자족구(莊子足灸)로 불로장생체험관이다. 중국 전국시대 송나라 사람인 장자는 진인은 목구멍이 아닌 발 뒷꿈치로 호흡한다고 하여 족뜸 체험을 하는 곳이다.

서복전시관에서 10경을 따라 움직이면서 불로장생을 원했던 진시황과 그 불로초를 찾아 나선 서복의 마음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서복불로초공원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
서복불로초공원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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