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여성 도착하다’ 展 전시장 여성 잡지 섹션 한쪽 벽에 전시된 근대기 잡지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
‘신여성 도착하다’ 展 전시장 여성 잡지 섹션 한쪽 벽에 전시된 근대기 잡지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2.2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신여성, 근대성 나타내는 존재로 등장… 자료 500여점 전시

인체 구조 그린 박래현 ‘예술해부괘도(1) 전신골격’ 최초 공개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 페미니즘을 다루며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후 페미니즘이 이슈가 되면서 다양한 관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00여년 전 ‘82년생 김지영’들, 즉 ‘신여성’에 대한 관점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시대 짧은 단발에 점잖은 양장을 입고 서구 대중문화를 누리는 ‘모던걸’, 나아가 근대적 지식과 문물, 이념을 체현한 여성들을 ‘신여성’이라 불렀다.

신여성의 의미와 논란은 서구 사회와 문물을 들여온 비서구식민지사회에서 그 내용과 초점이 다르게 나타났다. 영국에서는 치마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신여성을 기존의 남성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데 비해, 식민지 조선에서는 구조선 사회를 벗어나 근대적 이념과 문물을 추구하는 존재로 형상화했다.

안석주 ‘모-던 껄의 장신운동’. (출처: 조선일보)
안석주 ‘모-던 껄의 장신운동’. (출처: 조선일보)

한국 근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도전과 논쟁의 대상이었던 근대 식민기의 ‘신여성’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가 마련됐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오는 4월 1일까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신여성 도착하다’전을 연다.

전시는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근대 시각문화에 등장하는 ‘신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이제까지 남성 중심적 서사로 다뤄졌던 우리나라 역사·문화·미술의 근대성을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강승완 학예연구실장은 “한국 근현대의 가장 큰 사회 변동의 이슈인 ‘신여성’을 통해 ‘근대성’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전시를 기획했다”며 “서구와 남성 중심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 시각에서 근대성을 다시 보자”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이를 위해 회화, 조각, 자수, 사진, 인쇄 미술(표지화·삽화·포스터), 영화, 대중가요, 서적, 잡지, 딱지본 등 500여점의 다양한 시청각 매체들이 입체적으로 소개된다. 또 근대성의 가치를 실천하고자 한 새로운 주체 혹은 현상으로서의 신여성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과 해석, 통시대적인 경험을 공유하고자 현대 작가들이 신여성을 재해석한 신작들도 공개된다.

전시는 ▲1부 ‘신여성 언파레-드’ ▲2부 ‘내가 그림이요 그림이 내가 되어: 근대의 여성 미술가들’ ▲3부 ‘그녀가 그들의 운명이다: 5인의 신여성’ 등 총 3부로 구성됐다.

이유태 ‘인물일대_탐구(1944)’.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이유태 ‘인물일대_탐구(1944)’.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1부의 제목 ‘언파레-드’는 ‘온 퍼레이드(on parade)’의 1930년대식 표현으로 공연을 마친 배우들이 무대 위에 일렬로 늘어선 모습을 일컫는다. 당시 신문 기사들은 가수들의 사진을 나열하고 그들의 신상정보나 특징을 설명할 때 ‘언파레-드’란 용어를 썼다.

1부에서는 주로 남성 예술가들이나 대중 매체, 대중가요, 영화 등이 재현한 ‘신여성’ 이미지를 통해 신여성에 대한 개념을 고찰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다양한 근대기 잡지가 한 벽면을 채워 눈길을 끈다. 대중을 교육하고 계몽하는 미디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근대기 잡지 중 여성 잡지들은 낮은 취학률과 높은 문맹률의 현실을 타개하고 여성의 계몽을 실현한다는 기치 아래 발행됐다.

정찬영 ‘공작(1937)’. (출처: 정찬영 유족), 박래현 ‘예술해부괘도 (1) 전신골격(1940)’. (제공:조시비미술대학 역사자료실)
정찬영 ‘공작(1937)’. (출처: 정찬영 유족), 박래현 ‘예술해부괘도 (1) 전신골격(1940)’. (제공:조시비미술대학 역사자료실)

2부에서는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이 희귀한 근대기의 여성 미술교육과 직업의 영역에서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을 추구한 초창기 여성 작가들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장 중반부쯤에 있는 1972년 ‘한국근대미술60년’ 이후 45년 만에 공개되는 정찬영의 ‘공작(1937)’은 제16회 조선미전의 입선작이다. 이 작품은 두 딸을 낳은 뒤 얻게 된 외아들의 돌잔치를 하고 난 후 기쁜 마음을 화사하게 깃을 편 공작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정찬영이 노년기까지 거실에 늘 뒀을 정도로 평생 사랑했던 대표작이다.

우향 박래현(1920~1976)이 도쿄여자미술학교 시절 인체 구조를 공부하며 그린 ‘예술해부괘도(1) 전신골격(1940)’도 이번에 처음 공개된다. 박래현은 남편인 김기창과 12차례 부부전을 열었는데, 이는 과거와 달라진 여성 예술가의 위상을 시사해준다.

기생 김영월(金英月, 연도미상)의 사진. (제공: 부산박물관)
기생 김영월(金英月, 연도미상)의 사진. (제공: 부산박물관)

3부는 5명의 신여성 화가 나혜석, 무용가 최승희, 음악가 이난영, 문학가 김명순, 여성 운동가 주세죽 등을 조명한다. 이들 신여성은 20세기 이전의 전통적 사고가 아직 강했던 당시 찬사보다 지탄의 대상이었다. 근대가 되면서 조금씩 넓어진 여성의 활동반경에서 이들의 행로는 순탄할 수 없었고, 객관적으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각자의 분야에서 시대적 한계와 어려움을 극복했던 5명의 신여성을 보며 관람객은 오늘날 신여성이 추구하는 이념과 실천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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