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음식점에 들어가면 ‘물은 셀프’라고 써진 문구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영어로 물은?” 하고 물으면 “워러”라고 답하면 안 된다. 그러면 “땡” 하면서 “정답은 셀프”라고 말한다. ‘물 셀프서비스’는 영업하는 입장에서는 인건비를 절약하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음식 값을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어 사랑을 받고 있는 듯하다. 영어가 우리말을 잠식하고 있어 맘이 찜찜하긴 하지만 ‘셀프’라는 말은 곳곳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셀프’를 검색하면 셀프 빨래방, 셀프 세차장, 셀프 등기, 셀프 웨딩드레스, 셀프 인테리어, 셀프 집짓기, 셀프 염색, 셀프 도배라는 말이 뜨고 심지어 ‘욕실 타일 셀프 시공’도 뜬다. 이들 말에는 그동안 ‘전문 분야’로 여겨졌지만 전문가에 맡기지 않고 내 힘으로 스스로 해본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 비용 절약이 묘미지만 말이다. 그런데 셀프라는 말이 붙어서는 안 되는 말들도 생겨나고 있다. ‘셀프 소방점검’ 같은 말이 바로 그런 말이다.  

제천 참사와 밀양 참사 이후 ‘셀프 소방점검’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밀양 세종병원은 지난 3년 동안 병원 측이 ‘셀프 점검’을 했다. 과장급 인사가 소방시설 점검 결과 보고서에 ‘이상 없음’으로 쓰고 소방서에 보고했다. 제천 참사 때 건물주의 아들이 ‘셀프 점검’을 했다 해서 문제가 됐는데 똑같은 문제점이 밀양 참사에서도 확인됐다. 엄격히 이루어져야 할 소방점검이 어떻게 해서 ‘셀프 점검’하게 됐을까. 해서는 안 될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건물주가 잘못한 걸까 아니면 법과 제도가 문제일까?  

소방법상 점검에는 종합정밀점검과 작동기능점검이 있다. ‘스프링클러 등이 설치된 연면적 5000제곱미터 이상 건물’은 종합점검 대상이고 나머지는 작동점검 대상이다. 종합점검 대상은 전문 업체에 맡겨서 ‘소방정밀점검’을 받아야 한다. 작동점검은 자체 점검이라고도 하는데 건물에 관계되는 사람이 점검하는 관계인 점검과 소방시설관리사들이 수행하는 점검으로 나뉜다. 두 가지가 모두가 문제인데 ‘관계인 점검’이 더욱 심각하다. 소방안전관리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만 있으면 누구나 ‘셀프점검’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주 또는 업체에 종속돼 있는 사람이 건물의 문제점을 속속들이 파악해서 소방서에 보고할 수 있을까? 이런 법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건물주와 기업주를 위해서 그리고 힘센 정치인들 자신을 위해서 만든 법률 아니겠나 싶다. 대형화재가 나면 건물주 또는 회사도 큰 손실을 입거나 화마에 당한다. ‘건물주를 위한’ 법률이 건물주의 인생을 망칠 수 있다.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은 과정이 간단해서 누구나 쉽게 딸 수 있다. 건물주는 자신의 가족이나 친척에게 자격증을 따게 하거나 자격을 가진 사람을 직원으로 채용해서 ‘셀프 점검’을 한다. 건물주는 전문업체에 맡겨서 할 수도 있지만 돈을 적게 들이기 위해 ‘자기 사람’에게 점검을 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작동점검 대상 건물은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셀프 점검’은 ‘거짓 점검’ 또는 ‘가짜 점검’이 되기 쉽다. 소방 장비가 수명을 다하거나 파손되고 작동되지 않는 경우에도 ‘이상무’로 소방서에 보고하는 경우가 많다. 밀양 참사나 제천 참사에서 보듯 ‘셀프 점검’은 화재 가능성을 그만큼 높이고 화재가 났을 때 진화를 어렵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언론기사들을 보면 처음에는 건물주가 셀프 점검을 했다고 화살을 건물주에게 돌리는 글이 많았는데 지금은 제도가 문제라는 글이 많다. 건물주가 “셀프 점검을 안했더라면 화재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책망하기 쉬운데 건물주만 비난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 다음에 사고가 나도 또 건물주를 책망하고 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화재는 건물주 또는 건물 관계자가 잘못해서 발생하는 경우와 법과 제도, 점검체계 등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시스템이 잘 갖추어졌는데도 현장에서 잘못 대응해서 화재가 났다면 건물주나 관계인이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한국 사회처럼 시스템이 미비한 경우는 일차적으로 국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행정부도 문제지만 국회와 사법부, 헌법재판소도 문제다. 

이전의 정부와 국회가 사람의 안전이 아니라 자본의 이윤 논리, 경제 논리에 집착한 결과 ‘이상스러운’ 소방법이 탄생했다. ‘셀프 점검’이라는 있어서는 안 되는 현상까지 생겼다. 물도 셀프, 소방점검도 셀프, 안전도 셀프인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겁다. 시민의 참여와 개입 없이는 기존의 법과 제도는 잘 변하지 않는다. 믿을 건 시민의 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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