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산

최명길(1940~  )

길 없는 눈산 허리를
맨몸으로 헤쳐나간다.
한 동행자가 묻는다.
“어디가 길인가?”
“이 눈산에 길은 없다, 온산이 길이다.”
아름드리 벌거벗은 나무 아래
눈털모자를 벗고 고개 돌려 쳐다보는 바위
바위가 웃는다.

눈산에 길은 없다.

 

[시평]

‘눈산’, 온통 눈으로 뒤덮인 산을 일컫는 말이다. 온 산이 눈으로 뒤덮여 있다면, 그래서 거대한 산을 중심으로 천지가 희디흰 은백(銀白)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면, 참으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장관 속을 걸어 나오는데, 실은 별도의 길이 어디 있겠는가. 그 장관 그 자체가 바로 길, 길이 아니겠는가.

‘어디가 길인가?’라고 묻는 것은 사람의 일. 진정 그 사람의 일, 그 경지를 벗어나는 곳에 진정한 길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 눈산에 길은 없는 것’이고, ‘온산이 모두 길’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그래서 잠시 아름드리 벌거벗은 나무 아래, 눈털모자를 벗고, 고개 돌려 쳐다보니 바위가 웃는구나. 아니 웃는 것이 어디 바위뿐이겠는가, 온 천지가 온 천지에 자리한 모든 사물들이 빙긋이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은가. 진정한 길을 찾은 자만이 바라다 볼 수 있는 그 경지에서, 진정한 사물들이 웃는 그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눈산’에는 온통 눈뿐이기 때문에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그런 길은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마음의 길이 열리는 그런 곳이기도 하리라.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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