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유영선 기자] 정면에서 바라본 창경궁 대온실의 모습. 철골구조와 유리, 목재가 혼합된 건축물로 하얀 외관 덕에 깔끔하고 세련됨이 돋보인다. 대온실 앞에는 르네상스풍의 분수와 미로식 정원이 있다. 대온실은 국내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1907년 일본 황실 식물원 책임자였던 후쿠와가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했다. 2004년 등록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됐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29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정면에서 바라본 창경궁 대온실의 모습. 철골구조와 유리, 목재가 혼합된 건축물로 하얀 외관 덕에 깔끔하고 세련됨이 돋보인다. 대온실 앞에는 르네상스풍의 분수와 미로식 정원이 있다. 대온실은 국내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1907년 일본 황실 식물원 책임자였던 후쿠와가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했다. 2004년 등록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됐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29

우리나라 최초 서양식 온실

일제강점기 때 아픔도 상존

등록문화재 제83호로 지정

 

지난해 보수공사 뒤 재개장

연인들의 ‘실내 데이트’ 명소

70여종의 다양한 식물 전시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서울의 4대 고궁 중의 한 곳인 창경궁. 창경궁 내부에 온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게다가 그 온실의 모습은 고궁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독특한 건축물이다. 바로 서울에서 한겨울에도 꽃을 볼 수 있는 ‘창경궁 대온실’이다. 추운 겨울, 추위를 잠시 피해 연인과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실내 데이트 명소로 소문이 자자하다.

입장료 천원을 내고 정문에 들어서서 우측 길을 따라 창경궁의 겨울 풍경을 감상하면서 쭉 걸어가다 보면 한파에 꽁꽁 얼어버린 연못이 눈에 들어온다. 창경궁의 연못 춘당지(春塘池)다. 맑은 파란 하늘과 어울려 얼어붙은 연못의 경치가 수려하다.

춘당지를 지나 창경궁 북쪽 가장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한국적인 궁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하얀 서양식 건축물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온통 하얀 외관 덕에 깔끔하고 세련됨이 돋보이는 이곳이 바로 ‘창경궁 대온실’이다.

창경궁 대온실은 1907년 기공해 1909년에 건립된 국내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철골 구조와 유리, 목재가 혼합된 건축물이다. 100년이 넘는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아름다운 건축물 이면에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식물원이란 아픔이 상존한다. 대온실은 일제가 순종을 창덕궁에 가둬놓고, 그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창경궁에 동물원과 함께 지은 곳이기 때문이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창경궁은 동물원과 박물관, 놀이시설로 가득 찬 ‘창경원’으로 이름이 바뀌어 그 상징성이 격하됐다. 1983년 창경궁 복원 시 이들 대부분은 이전됐지만 대온실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인식돼 그대로 남았다. 대온실은 대한제국 말기에 도입된 서양 건축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유산으로 인정받아 2004년 등록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됐다.

2013년부터 시작된 보수공사로 관람이 중단됐던 대온실은 지난해 11월 10일 재개방됐다. 특히 이번 보수공사에서는 타일 철거 과정에서 대온실 최초 준공 시에 사용된 영국제 타일 원형을 발견해 1905년 출간한 제조사의 책자를 근거로 보수하는 등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대온실은 1907년 일본 황실 식물원 책임자였던 후쿠와가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했다.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온실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지난 23일 창경궁 대온실을 찾은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 등이 대온실 속 식물들을 관람하고 있는 모습. 영하 10도 이하로 뚝 떨어진 매서운 한파에도 따뜻한 대온실은 사람들의 여유와 웃음이 넘쳐났다.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지난 23일 창경궁 대온실을 찾은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 등이 대온실 속 식물들을 관람하고 있는 모습. 영하 10도 이하로 뚝 떨어진 매서운 한파에도 따뜻한 대온실은 사람들의 여유와 웃음이 넘쳐났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29

기자는 지난 23일 평일 오후 시간대에 이곳을 찾았다. 영하 10도 아래로 뚝 떨어진 매서운 한파의 영향인지 창경궁 대온실 내부는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종의 도피처처럼 느껴졌다. 보수공사를 끝낸 지 얼마 안 돼서 하얗게 도색된 건축물이 유난히 흠이 없고 깨끗하게 보인다. 대온실 앞에는 르네상스풍의 분수와 미로식 정원도 있어 눈길을 사로잡았다. 정문 앞에 서니 양쪽 문 아래쪽에 대한제국의 상징인 오얏꽃(자두꽃) 무늬가 보였다. 지붕 용마루 역시 오얏꽃 무늬로 장식됐다.

100번 넘게 대온실을 방문했다는 박성국(83, 남, 서울 강북구 수유동)씨는 “오얏나무(자두나무)는 조선 왕조의 이(李)씨를 상징하는 식물”이라며 “대한제국은 오얏꽃을 황실의 문양으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정문을 열고 들어서니 좌우측으로 봄을 맞이한다는 영춘화가 노란 꽃을 활짝 피우며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대온실 내부에 들어서니 수많은 다양한 식물들이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 진열돼 있었다. 대온실 내부에는 천연기념물 제194호 창덕궁 향나무, 통영 비진도 팔손이나무(제63호)와 부안 중계리 꽝꽝나무(제124호) 등 천연기념물 후계목과 식충식물류, 고사리류 등 70여종의 다양한 식물이 전시돼 있다.

이미 애기동박나무는 붉은 꽃을 피웠고, 빨간색과 분홍 빛깔의 선인장도 인상적이다. 겨울에도 새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피라칸사스와 32년 만에 창경궁으로 돌아온 소철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외에도 눈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희귀하고 신비스러운 식물들을 창경궁 대온실에 오면 구경할 수 있다.

대온실을 자주 찾는다는 육금자(64, 여, 서울 성북구 안암동)씨는 “재개장 후 처음 왔다”며 “영춘화 같은 봄꽃이 미리 펴서 사진 찍으러 왔다”고 말했다.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천연기념물 모수(母樹)에서 직접 채취하여 키워 낸 후계목(좌측부터 부안 중계리 꽝꽝나무, 부안 도청리 호랑가시나무, 창덕궁 향나무)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29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천연기념물 모수(母樹)에서 직접 채취하여 키워 낸 후계목(좌측부터 부안 중계리 꽝꽝나무, 부안 도청리 호랑가시나무, 창덕궁 향나무)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29

대온실은 흰색의 건물 구조와 유리로 된 벽면으로 돼 있어서 유독 파란 하늘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온실 곳곳에서는 빛이 비쳐서 식물들에게 생명력을 공급하고 있었다.

강원도 강릉에서 처음으로 창경궁 대온실에 왔다는 김영석(71, 남)씨는 “최대한 빛이 많이 들어올 수 있도록 나무로 창틀을 날씬하게 만든 게 인상적”이라며 특색 있는 건축물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밖은 최강 한파로 온몸을 움츠리게 하지만 대온실 안은 다른 세상이다. 따뜻한 온실에서 푸릇푸릇한 식물을 보며 웃음 지을 수 있는 곳이다.

창경궁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연인과 친구, 가족 단위의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이 평일 추운 날씨에도 끊임없이 오얏꽃 무늬가 새겨진 대온실의 정문을 열고 들어왔다. 온실 재개장 소식을 듣고 북극한파에도 제법 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창경궁 대온실을 찾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의 모습 속에는 여유가 있고, 행복한 미소가 입가에 가득했다. 기념사진을 찍는 연인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독특한 식물의 이름을 읊으며 깔깔대는 여학생들, 전문가용 DSLR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60~70대의 어르신들, 셀카를 찍는 젊은 청년들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채로운 식물들과 조화를 이루는 풍경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 힐링이 된다.

붉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피라칸사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29
붉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피라칸사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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