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한뿌리사랑 세계모임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제28차 여의도 역사포럼을 개최한 가운데 심백강 역사학 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가 ‘중국은 역사상 한국의 일부였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한뿌리사랑 세계모임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제28차 여의도 역사포럼을 개최한 가운데 심백강 역사학 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가 ‘중국은 역사상 한국의 일부였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심백강 박사, 한뿌리사랑 세계모임 역사포럼서 강의
중국 가장 오래된 지리서인 ‘산해경’
4천년전 발해 모퉁이에 고조선 건국 증명
‘무경총요’ ‘태평환우기’ 등에도 기록 남아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우리 민족이 첫 삽을 뜬 곳은 북경의 고조선입니다.”

심백강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는 최근 한뿌리사랑 세계모임(대표 김탁)이 주최한 역사포럼에서 ‘중국은 역사상 한국의 일부였다’를 주제로 이같이 강조했다.

이날 심 박사는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이 사실상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하더라”라고 발언한 것에 반증하며 “문헌적으로 증명할 자료가 없으면 진실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심 박사에 따르면, 고조선은 한민족이 세운 첫 국가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서인 ‘산해경’에는 ‘북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으니 그 이름을 조선이라고 한다’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북쪽바다는 발해를 말한다. 중원에서 바라볼 때 북쪽에 있는 바다는 발해밖에 없다. 이에 ‘맹자’에도 발해를 북해라고 표현한 내용이 나온다.

심 박사는 “태조 이성계는 600년 전 대동강유역에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그런데 산해경은 4천년전에 작성된 것”이라며 “즉 고조선이 4천년전 발해 모퉁이에 건국됐음을 증명해 준다”고 설명했다.

고조선이 발해의 모퉁이 즉 오늘날 북경부근을 중심으로 건국됐다는 것은 송나라 때 국가에서 편찬한 ‘무경총요’에도 담겨있다. 기록된 내용에는 “북경에서 북쪽으로 ‘고북구’를 가는 중간에 ‘조선하’가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오늘날 중국 지도상에 조선하는 지워지고 없다. 하지만 고북구라는 지명은 여전히 존재한다. 또 고북구와 북경사이에 조선하 대신 ‘조하’라는 강이 흐르고 있다.

심 박사는 “오늘날의 조하가 1천년 전에는 조선하로 불렸음을 말해준다”라며 “북경이 일찍이 조선 땅이 아니었으면 왜 북경 북쪽에 흐르는 강 이름을 조선하라 했겠는가”라고 언급했다.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한뿌리사랑 세계모임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제28차 여의도 역사포럼’을 개최했다. 역사포럼은 ‘중국은 역사상 한국의 일부였다’를 주제로 마련됐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29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한뿌리사랑 세계모임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제28차 여의도 역사포럼’을 개최했다. 역사포럼은 ‘중국은 역사상 한국의 일부였다’를 주제로 마련됐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29

송나라 때 낙사라는 역사학자가 쓴 ‘태평환우기’에는 “하북도 노룡현에 폐허가 된 조선성이 남아 있는데 이곳이 은나라의 왕자 기자가 망명을 해 왔던 조선이다”라고 적혀 있다.

송나라 때 하북도 노룡현은 오늘날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이다. 이곳은 중국 전역에서 풍광이 가장 빼어난 발해만 부근으로 중국 공산당 간부들의 휴양지였다. 중국의 정치가인 모택동이 여름이면 수영을 즐기던 북대하가 가까운 거리에 있다.

발해연안 북경부근에서 고조선의 건국을 입증하는 가장 결정적인 근거는 1500년 전 선비족 모용은의 비문에 나타난다. 남북조시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유신이 쓴 모용은의 묘비명에는 ‘조선건국(朝鮮建國) 고죽위군(孤竹爲君)’이라고 적혀있다.

선비족은 삼국시대에 오늘의 하북성 일대에서 건국했다. 모용은의 묘비명은 선비족이 하북성 일대에서 건국하기 이전에 최초로 고조선이 이 땅에서 건국을 했고 뒤이어서 백이, 숙제의 나라 고죽국이 여기서 건국된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중요한 자료다.

이처럼 4천년전에 작성된 산해경, 1500년전의 모용은의 묘비명, 1000년 전에 편간된 무경총요와 태평환우기에는 오늘날 북경부근 지역에 대륙고조선이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심 박사는 “북경의 역사적 연혁을 살펴보면 북경의 최초 원주인은 한민족이고 오늘날의 북경 중남해에 있는 한족정권은 원주인이 아니다”라며 “우리 한민족의 터를 닦아 놓은 곳에 잠시 입주한 세입자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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