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소장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는 1948년 10월 북한과 소련의 수교로 비롯됐다. 수교 13년 후인 1961년 7월에는 ‘조소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이 채결됐고, 김일성 주석이 1984년과 1986년 두 차례 소련을 방문했으며, 양국은 1985년 국경협정과 원자력발전소 건설협정을 체결했다. 그런데 1990년 한국과 소련이 수교하고, 북한은 1991년 소련에서 발생한 쿠데타를 지지했으나 이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 양국관계는 서먹서먹하게 됐다. 2000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집권하고 그 해에 양국은 ‘신우호선린협력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한러 수교 이후 소원해진 관계를 어느 정도 회복하게 됐다. 2000년 푸틴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고, 2001년과 2002년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러시아 극동지역을 방문했다. 2008년에는 시베리아횡단철도와 한반도종단철도 연결사업의 시범사업인 나진-하싼 철도 기공식이 개최됐으나 2009년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써 북러 경제협력관계도 중단됐다. 

혈맹이라던 중국마저도 북한 제재에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하자 러시아가 친북정책으로 선회하고 있는 실정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12월 30일 북한과의 관계를 단절하라는 미국의 요청을 거부했다. 푸틴 대통령은 구석에 몰린 북한을 겨냥한 더 이상의 제재와 위협은 쓸모없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도 미국의 니키 헤일리 유엔 대사가 북한의 ICBM 시험발사 후 안보리에서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끊을 것을 모든 국가에 요청하자, 이를 거절하면서 제재로 북한을 압박하는 것은 한계에 봉착했다며 오히려 유엔 결의문에 대화재개가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년 1월 20일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정부는 최단 시간 내에 미국과 북한 간 직접대화를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핵문제를 빌미 삼아 남북한을 상대로 투트랙 외교전에 나선 러시아를 바라보는 중국의 속내도 착잡해 보인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던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하고 귀국한 후 중국은 러시아의 행보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북한에 유류공급을 계속함은 물론 러시아 국영 통신업체인 트랜스텔레콤은 북한에 인터넷 망을 설치하고 북한과 블라디보스톡을 연결하는 통신사업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공식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지지하면서도 북한에 중요한 생명줄을 제공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달 25일 미국의소리방송(VOA)은 동중국해 해상에서 싱가포르 소유의 선박에서 북한의 유조선으로 화물을 옮겨 싣는 장면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북한핵 개발을 중지시키는 데는 대북 제재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러시아가 계속 북한에 석유를 공급하고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는 한 북한의 자금줄을 차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러시아는 대외적으로는 북한 제재를 찬동하면서 실제적으로는 친북한 정책으로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기 위해 치명적인 제재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렇듯 북한핵으로 야기된 미중일 주변국 관계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러시아는 유대를 강화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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