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재판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 어떠한 간섭에도 굴하지 않고 원칙을 양보하지 않는, 독립되고 정의로운 법관에 의하여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헌법이 법관에 부여한 사명이고, 그러한 재판이 좋은 재판입니다. 이는 국민 여러분의 상식이기도 합니다.” 박근혜 정부 때의 대법원 행태를 질타하는 여론에 대해 김명수 대법원장이 24일 밝힌 입장문의 내용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참담한 심정으로 국민들께 말씀드린다며 합당한 후속조치를 취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러고도 정의를 말할 수 있나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다. 아니 그 대상이 정의의 ‘마지막 보루’라는 사법부의 행태라는 점에서 분노마저 금할 수 없다. 아무리 박근혜 정부가 온갖 농단사태를 벌였다 하더라도 사법부는 그 바깥에 있어야 했다. 굳이 삼권분립이나 정치적 중립성을 등을 말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사법부가 국민의 높은 기대를 충족시키기는커녕 국민적 상식에도 미치지 못했다면 그것은 이미 사법부가 아니다. 그리고 그 사회의 법치는 무너진 것이나 다름 아니며 정의를 운운하기도 부끄러운 일이다. 사법부가 권력 앞에 굴신하고 권력의 입맛에 맞춰 춤을 준다면 거기에 무슨 정의가 살아 있겠는가.

‘판사 뒷조사 문건(블랙리스트) 의혹’ 등을 조사한 법원 추가조사위 결론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과 관련해 청와대와 대법원 고위층의 ‘부적절한 소통’이 있었으며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에 대한 ‘성향 분석’을 해 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사실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재판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자칫 선거법 위반이 유죄가 될 경우 박근혜 정부의 정당성이 통째로 흔들릴 수 있으며 그 책임자들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론의 분노도 감당키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항소심은 선거개입을 유죄로 판결했다. 이제 대법원이 최종 판단을 할 차례였다.

바로 이 즈음 청와대 우병우 전 수석이 앞장서 대법원 고위층과 어떤 얘기가 오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청와대의 불만과 전원합의체 회부 같은 민감한 얘기도 전달됐다. 이 때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운운하며 사법부 민원사항을 놓고 거래를 의심케 하는 문건 내용도 적시돼 있다. 그래서였을까. 대법원은 당초의 입장을 바꿔 청와대 요청대로 전원합의체에 원세훈 사건을 회부했고 결국 2015년 7월 대법관 13대 0의 만장일치 의견으로 원심을 파기했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청와대의 희망대로 이뤄진 셈이다.

사실이 이렇다면 지금이라도 대법원은 반성을 넘어 참담한 심정으로 국민께 사죄하고 대대적인 개혁에 나서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가 않다. 대법원 추가조사위의 조사결과가 나온 지 하루 만에 대법관들이 집단행동에 나섰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가 대법원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공개적으로 반박한 것이다. 자체 조사한 결과마저 대법관들이 스스로 반박한 셈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결국 대법원의 진실마저 특검이나 검찰수사로 밝혀야 한다는 말인가.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참으로 아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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