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는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 수상작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문장 감동처럼 한반도가 갑작스럽게 눈빛이 환하게 빛나는 모습이다. 남북한이 지난해까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로 긴장과 전쟁 위험이 고조됐으나 2월 9일부터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급격한 해빙무드를 보이기 때문이다.
남북한은 지난주 스위스 로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본부에서 양측 체육대표단이 만나 평창동계올림픽 입장식에 남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뉘어지지 않은 ‘한반도기’를 앞세워 입장하고, 여자아이스하키에서 올림픽 사상 첫 단일팀을 구성해 출전하기로 하는 등 역사적인 합의를 이뤘다고 발표했다. 이번 합의는 남북한 긴장이 최고조로 올라있는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결정된 것인 만큼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수십년간 남북한은 군사적 대결과 외교적인 마찰을 보이는 가운데 스포츠를 통해 경쟁을 하면서도 화해 분위기를 이끌었다. 북한은 88서울올림픽을 앞둔 지난 1987년 대한항공 기내에 숨겨둔 폭발물로 115명의 인명을 살상하고 서울올림픽 공동개최를 주장하며 방해책동을 벌였으며 끝내 불참했다. 남북한은 1991년 탁구와 축구에서 사상 첫 단일팀을 구성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각각 여자단체전 우승과 8강이란 쾌거의 성적을 올렸다. 1998년 김대중 정부의 등장이후 10년간 한국의 햇볕정책 영향으로 남북한은 ‘스포츠 데당트 시대’를 열었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올림픽,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 등 중요 국제종합대회에서 공동입장을 했던 남북한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박근혜 정부까지 9년여간 스포츠 문호가 꽁꽁 막혔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폭격 등 도발책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6월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대화와 화해를 이루기 위해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에서 평창동계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을 제의했지만 북한의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자신의 책상에 핵 단추가 준비됐다며  그동안 추진했던 핵프로그램이 완성됐음을 알리고 남북한과 세계평화를 위해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을 파견할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남북한은 김정은의 신년사가 계기가 돼 곧바로 양측 대표회담을 판문점에서 갖고 평창동계올림픽 단일팀 구성과 북한 대표단 참가문제를 논의했다. 회담과정에서 한국은 남북 평화에 기여한다는 정치적인 이유를 내세워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에 합의해 올림픽을 바라보고 수년간 훈련을 해온 한국 선수단의 희생만을 가져올 수 있다는 국민적인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스포츠는 보편적이지만 스포츠 자체가 한반도의 정치적 해빙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동안의 남북한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하루 전날인 2월 8일 평양에서 건군절 열병식 개최를 통해 무력시위를 벌이는 것은 ‘스포츠와 남북관계는 별개’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남북한 관계는 겉으로 날씨는 맑은 것 같지만, 긴장감의 파고는 높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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