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간직한 우리 민족의 이면에는 부끄러운 역사가 내재돼 있다. 역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유전된 ‘인식의 틀(프레임)’을 말한다. 그것은 뭘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분리·붕당·당파다. 긴긴 세월 그 프레임 속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훈구세력(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후 기득권이 된 세력)에 맞서 사림(유림, 성리학자)이 출현한다. 그 결과 사대사화(연산군에서 중종·명종 대에 걸친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는 물론 이어지는 반정과 반역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경험해야 했다. 사화를 통해 권력을 잡은 사림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눠진다. 동인은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지고, 북인은 다시 소북과 대북으로 갈라졌으며, 서인 또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지는 붕당과 당파의 연속성 속에서 탐관오리가 들끓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아우성치는 와중에 임진왜란과 정묘호란·병자호란을 겪어야 했고, 급기야 일제 식민치하를 맞는 한일합방(경술국치)에 이르러 나라를 빼앗기는 운명을 자초하고 말았다. 즉, 망국(亡國)의 역사는 누가 갖다 준 게 아니며 스스로 그 길을 걸은 것이다.

어찌 그뿐인가. 해방과 함께 찾아온 남과 북이라는 또 다른 양상의 분열로 동족상잔이라는 지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비극의 역사 또한 경험해야 했다.

결국 지구상 남은 유일의 분단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사는 나라가 됐다. 분단된 나라는 또 다시 동과 서로 나눠지며 온갖 지역주의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국민들은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는 위정자들의 허울 좋은 이름의 희생양이 되어 분리에 분리를 강요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앞장서기도 하니, 우리의 솔직한 자화상이다.

정당은 수없이 갈라지고 바뀌며 변화해 오는 가운데, 보수와 진보로 나눠지고, 거기서 다시 진짜와 가짜 보수가 나오고 중도 보수와 진보가 나오고, 또 다시 통합보수와 반대파로 나눠지는 웃지 못할 현대판 이합집산의 사색당파를 보면서 문명은 발달했다 할지라도 우리의 정신세계와 문화의식은 퇴보했음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 역사를 통해 지혜롭게 오늘을 진단하고 내다볼 수 있는 혜안(慧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를 만난 것이다. 그렇듯이 해방 후 혼란한 정국은 정변을 자초했고, 그 정변에 의해 탄생한 현대판 훈구세력은 지금까지의 기득세력이 되어 긍정과 부정의 역사를 가져왔고, 긍정보다 부정을 각인시켜온 이 시대의 사림은 그 옛날 사대사화를 방불케 하는 숙청을 자행하고 있다. 이것이 정치의 속성이니 굳이 말릴 생각은 없으며 말려서 될 일도 아니라는 점도 잘 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는 스승이라는 말 때문이다. 그 말은 역사를 거울삼아 오늘도 내일도 그와 같은 우를 범해선 안 된다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면교사라 했다.

훈구와 사림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조명해 보자. 훈구세력은 보수라는 말처럼 현실정치에 집착을 하게 되며, 사림은 진보라는 말처럼 이상주의 실현을 주장한다. 즉, 이 두 세력이 늘 충돌하는 데는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시 말해 훈구세력이 지향하는 정치는 현실 정치가와 행정가를 필요로 하고, 사림의 진보세력은 학자와 교수 나아가 문학(시인) 등 그야말로 이상주의자들을 선호하며 등용하게 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정치는 나라와 국민의 안전과 생명과 방위를 당장 해결해 나가야 하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이상주의가 늘 이상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인 것이다. 이는 시행착오 같은 예행연습을 불허하고 불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문재인 정부에 있어 필요한 것은 오늘의 내가 어디서 떨어진 것이 아니며, 역사의 연속성 가운데 점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감성과 감정과 이상과 포퓰리즘에 의한 정치의 한계와 오만을 인정하고, 지지자들이 아닌 진정한 국민과 소통하고 협치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또 적재적소라는 말처럼 행정가·정치가·학자 등이 균형 있게 포진하고 어우러진 합리적 정책과 통치를 할 때 그것이야말로 이상적인 이상주의가 아닐까. 이러다 망국의 길을 걷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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