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김상곤식 아마추어 교육정책이 또 하나의 뇌관을 건드렸다. 지난해 12월 교육부는 ‘유아교육 혁신방안’에서 유아의 다양한 교육권리 침해 해소를 위해 초등 1·2학년에 이어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방과후 및 특별활동)을 금지하고 자유놀이 위주로 탈바꿈 시키겠다고 했다. 영어수업 금지 정책을 두고 학부모들은 유치원에서 영어수업을 금지하면 오히려 영어 사교육을 부추길 것이라며 반대한다. 교육계는 유아기 영어수업은 유아들의 뇌 발달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창의성을 발달시키는 교육이 더 중요하다며 찬성한다.

유아기는 상상력, 창의성이 가장 발달하는 시기여서 모국어를 통해 더 많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워주는 수업을 해야 한다는 논리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영어수업이 모국어 교육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은 동의하기 힘들다. 다문화 부모를 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2, 3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유치원 시기가 언어 발달에 가장 좋은 시기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간혹 외국어를 원어민 못지않게 구사하는 유아들이 모국어도 다양한 어휘를 구사하는 경우를 본다. 영어수업이 모국어 교육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유치원 연합회는 유치원 영어수업은 유아들의 지능발달을 염두에 두고 단순히 단어를 암기하는 수업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양한 언어를 습득하도록 놀이 위주 수업을 하며, 학부모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다양한 교육기회의 제공과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유치원 영어수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일부 아이들이 낯선 외국인이 진행하는 영어수업에 거부감을 갖거나 영어수업의 효과가 크지 않은 부작용도 있다. 이 정도 부작용은 모국어 교육이나 기타 공교육에서도 나타난다. 일부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금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속담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어불성설이다.

유치원 영어수업 금지와 함께 시행 예정인 초등 1·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에 대해 ‘학부모 71.8%가 유지에 찬성한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이처럼 영어수업에 대한 학부모의 관심이 폭발적인데 유치원 영어수업을 금지시키면 결국 아이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모는 꼴이 된다. 공교육에서 3만원에 놀이 위주 영어수업을 받을 수 없게 되면 50만원, 100만원 짜리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 사교육을 마음껏 시킬 수 있는 금수저와 흙수저 아이들 간 괴리감이 더 커지고 학부모의 불만은 가중될 것이다.

아무리 옳은 정책이라도 국민이 수용하고 납득할 수 있어야 좋은 정책이다. 다행히 유치원 영어수업 금지는 재검토를 하겠다고 했지만 초등 1·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는 강행할 태세다.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영어 수업을 하다가 초등 1·2학년에 금지시키면 3학년 때 시작하는 영어수업을 대비해 사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다. 초등 방과후 영어수업을 금지한 채 어린이집, 유치원만 영어수업을 허용하는 게 무의미한 이유다.

학부모들의 요구대로 초등 방과후까지 영어수업을 허용해야 한다. 초등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조치로 학부모들은 지금 영어 사교육 알아보느라 혈안이 돼 있다. 학부모들의 불안과 경쟁 심리를 부추겨 사교육업체만 배불리고 있다. 방과후 수업 도입 목적이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것인데 방과후 수업을 금지하는 것은 사교육을 받으라는 의미와 같다.

지금과 같은 혼란은 교육정책이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원인이다. ‘어륀지’로 대변되는 이명박 정부 영어 몰입교육을 적폐라고 규정하고 무조건 폐지하려는 정치색이 가미된 것이다. 교육은 정치로 한번에 바꿀 사안이 아니다. 교육정책의 당사자인 학부모와 학생들의 의견을 먼저 물어야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교육부, 교육청 고위 관료들의 복지부동이다. 교육감이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혁신학교 정책에 대해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며 직언을 하지 않는다.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피해에 대해서는 눈도 감고 귀도 닫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여론조사 결과가 눈앞에 있어도 학교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고 오로지 자신의 자리만 유지하기 급급하다.

정책을 만들기 전에 학부모와 학생에게 이롭고 공평한 정책인지를 검토해야 한다. 졸속으로 발표하고 반대가 많으면 슬그머니 꼬리 내리는 정책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만큼은 민심이 바닥이다. 민심은 천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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