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일본이 ‘학도지원병’이라는 명목으로 우리나라의 학생과 청년 4천385명을 태평양전쟁에 강제 동원한 구체적인 사실이 정부 보고서를 통해 공개됐다. (출처: 연합뉴스)
1940년대 일본이 ‘학도지원병’이라는 명목으로 우리나라의 학생과 청년 4천385명을 태평양전쟁에 강제 동원한 구체적인 사실이 정부 보고서를 통해 공개됐다. (출처: 연합뉴스)

보고서 “실질적인 강제동원 맞다”

극적 탈출해 독립군으로 활동도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일본이 1940년대 태평양 전쟁 당시 우리나라 학생과 청년을 ‘학도지원병’이라는 명목으로 강제 동원한 구체적인 정황이 정부 보고서를 통해 밝혀졌다.

행정안전부는 “정부에서는 처음으로 태평양전쟁에 동원된 조선인 청년의 피해 실태 조사 내용을 담은 진상보고서를 발간했다”고 22일 밝혔다.

행안부는 “학도병으로 동원된 조선인은 그동안 약 4385명으로 추정됐을 뿐 구체적인 자료가 없었다”며 “이번 보고서는 피해 실태를 종합적으로 규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보고서는 행안부 과거사업무지원단과 고려대학교가 지난해 10부터 12월까지 함께 진행한 진상조사 결과의 내용이다. 학도병 제도 시행 배경부터 동원 규모, 부대배치 실태 등 전체적인 학도병 동원 피해 실태를 조사했다.

특히 조사진은 당시 ‘육군특별지원병임시채용규칙’과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학도병 출신자 모임 ‘1.20 동지회’의 회고록, 한국광복군·독립유공자 명부,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명부 등을 폭넓게 살펴봤다.

보고서에 따르면 학도병은 전문학교 이상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군인 동원제도다. 1943년 말 기만적인 지원과 전형 절차를 거쳐 동원됐다.

학도병 동원 대상자로 지목된 총 6203명 가운데 70%에 해당하는 4385명이 군인으로 차출됐다. 보고서는 이를 ‘실질적인 강제동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학도병을 거부한 청년들은 군수공장 등지에 각각 보내졌다.

이때 동원된 학도병은 1944년 1월 20일 일본군 부대에 입영 후 훈련을 받고 각지에 배치됐다. 절반은 일본, 30%는 중국전선, 나머지는 한반도 내에 잔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행안부는 “이번 발굴된 자료 중에는 전선 배치 이후 탈출해 광복군 등 소속으로 독립운동을 펼친 이들의 기록도 상당수 포함됐다”며 “앞으로 독립유공자 포상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실제 학도병 가운데 일본군을 탈출해 광복군에 참가한 이는 43명,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사람은 71명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조사진이 찾은 일본군 명부에는 목숨을 걸고 일본군을 탈출한 학도병의 사례도 자세히 나오기도 했다.

평양 출신인 전 고려대 총장 고(故) 김준엽 선생은 1944년 1월 20일 학도병으로 입영해 중국 안동과 상해관을 거쳐 보병으로 서주에 배치됐다.

그는 초년병 교육을 받던 같은 해 3월, 행군 전날 복통을 호소해 교관으로부터 내무반에 머물 것을 명령받았지만 “복통에도 행군에 참가하겠다”고 밝히고서 그날 밤 부대를 탈출했다.

일본군 경비대장은 다음 날 아침 점호에서 김 선생이 보이지 않자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다. 인근에 위치한 경비대도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 나서는 등 중국에 밀정까지 보내 김 선생의 뒤를 캤지만 결국 김 선생을 찾지 못했다. 이후 서류상으로 ‘생사불명’으로 처리됐으나 김 선생은 한국 광복군에 합류했다.

한편 행안부는 “꽃다운 청년을 전장에 내몰아 희생시킨 일본이 우리나라에 끼친 강제동원 피해를 사실대로 정확히 밝혀내야 한다”며 “앞으로 진실규명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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