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새해 들어 첫 아침평론에서 개헌을 언급한 바 있다. 아마도 올해 국내 문제 가운데 국가 장래를 보아 민주주의의 신장과 더불어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없다고 필자가 나름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국동시지방선거나 평창동계올림픽 등 현안도 있지만 나라의 기본법인 헌법의 개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이고, 정치권의 합의가 계속 미뤄지는 개헌 동상삼몽(三夢)상태에서 조속히 이뤄져야 할 개헌의 당위성을 재차 강조하기 위함에서다.  

잘 알다시피 현행헌법은 30년 전에 만들어졌다. 한 세대 전의 헌법 내용들이 현시대와 맞지 않은 부문이 상당하고, 기술문명의 발달과 새로운 국민주권의 영역 확대에 따라 보완해야 할 내용들이 많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갑자기 10월유신 직후 개헌 내용이 떠오른다. 1972년 10월 17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긴급조치권으로 국회를 해산시켰다. 그 후 10. 27일 비상국무회의에서 의결된 헌법개정안을 공고해 11월 21일 국민투표에 붙였고, 그해 12월 27일 공포·시행된 유신헌법은 헌정사상 7번째 개헌된 헌법으로 제6차 개헌 이후 3년만의 일이었다.   

국민투표를 앞둔 유신정권에서는 헌법 개정의 당위성을 적극 홍보했던 바 아직도 나의 기억이 생생하다. 민주주의제도를 도입한 헌법 부문에서 외국 사례를 많이 인용했는데 ‘헌법’이란 양복이 한국민의 체질에 맞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 양복을 한국의 실정과 한국인의 치수에 딱 맞게 맞춰야 신체 활동이 자유롭고 걸리적거리지 않는다는 홍보였다. 비유가 쉬운 그럴듯한 홍보 내용이긴 하나, 잘 정비돼 별 문제가 없었던 종전의 헌법을 매도했던 것이다.      

후세에서 악법으로 규정된 유신헌법이 제6차 개헌 후 3년 안에 바꾼 것에 비해 이번 개헌론 대두에는 현행헌법이 전두환 정권에서 만들어지고 30년 세월이 흘렀다는 기간을 앞세운다. 그 사이에 지방자치가 실시되고 새 분야의 산업기술시대가 열렸으니 기간적인 면에서 비춰볼 때에도 개헌 시계는 이미 지나쳤다는 것이다. 과거 정부시절부터 개헌을 끄집어냈으나 권력을 장악한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의 입장과 세법이 다르다보니 말만 요란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개헌은 정치권에서 주로 논의하고 있지만 국민의사가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개헌론에 불 지피고 20대 국회에 들어와서도 논의한 것도 시간적으로는 1년 이상이 지났다. 시간을 질질 끈다고 잘된 개헌안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문제로 지적된 대통령 5년 단임제 등 권력구조의 개편을 포함해 우리 현실에 맞고 국민이 요구하는 그야말로 민주주의가 신장되고 국민의 자유권이 잘 보장된 개헌으로 국격과 국민생활의 향상을 가져와야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1월 중으로 당의 개헌안을 확정하겠다고 했다. 또 정세균 국회의장도 개헌 일정 등을 종합 고려해 “3월 중순엔 개헌안 발의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의장의 요구대로 한다면 2월 중에는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개헌안이 확정돼야 하는데 한국당에서는 극구 반대 입장이다. 정부·여당이 6.13지방선거일에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동시에 하자는 게 대세를 이룬다. 이에 반해 한국당에서는 관제(官制) 개헌을 하지 않고 국민의 의사가 반영된 국민개헌을 하겠다면서 지방선거와 개헌 투표를 연계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부·여당에서 개헌에 대한 방향과 그 설정이 이상하게 대두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을 하자는 대선공약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지방분권이 담긴 개헌을 1차적으로 하고, 대통령의 임기 등 권력구조 개편은 여야합의가 나오면 하반기에 따로 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2월 중으로 여야합의가 원만하지 않다면 상·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개헌을 하자는 취지인 바, 이는 여당에서 6.13지방선거와 별도로 개헌 국민투표를 할 경우 12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니 국민혈세를 아껴야 한다는 당초의 의도에도 반(反)하게 된다.  

이러한 두 차례 개헌론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도 동감하고 있는 의도가 읽혀진다. 지난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권력 구조 개편 부분은 합의를 이뤄낼 수 없다면 다음으로 미루는 방안도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는 바, 이는 여야 합의가 쉬운 기본권과 지방 분권에 대한 개헌이라도 먼저 추진하고,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은 나중에 추진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개헌 약속을 일단 지켜냄으로써 상당한 국정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개헌론이 대두된 지 30년이 지났어도 실현되지 않았으니 개헌이 손쉬운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올해에는 국민의사가 담긴 제7공화국헌법이 탄생돼야 한다. 개헌안이 지금까지 여야 논의로 어느 정도 진전됐을 것이니, 조속히 개헌안을 만들어 지방선거와 동시 국민투표에 붙여지는 게 최선인 것이다. 정부·여당이 대안으로 구상중인 권력구조-지방분권을 분리한 두 번의 국민투표는 바람직하지 않다. 개헌은 한번으로 끝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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