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포밍 일루션 ‘푼크툼’ 공연사진. (제공: 두산아트센터)ⓒ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19
퍼포밍 일루션 ‘푼크툼’ 공연사진. (제공: 두산아트센터)ⓒ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19

마술사 이은결의 또 다른 이름 EG

12개의 퍼포먼스로 관객 시선 집중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공연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나오고, 극장은 이내 컴컴해진다. 고요한 적막 속 공연자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무대 중앙 화면에 하나의 영상만 재생된다. 한참 뒤 한 사람이 나와서 퍼포먼스를 시작한다. 그리고 화면에는 모든 광명을 의심하라는 내용의 시 ‘오징어’가 뜬다. 장내는 이 퍼포먼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옆 사람과 나누는 귓속말로 가득 찬다. 이처럼 퍼포밍 일루션 ‘푼크툼’은 모든 관객 한명 한명에게 서로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관객의 직관에 공연 해석을 맡긴 퍼포밍 일루션 ‘푼크툼’이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Space 111에서 오는 20일까지 공연된다.

‘푼크툼’은 두산아트랩 2018시즌 작품 중 하나다. 두산아트센터는 2010년부터 만 40세 이하 젊은 예술가들이 잠재력 있는 작품을 실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두산아트랩을 진행했다. 올해 선정된 아티스트는 남현우, 종이인간, EG, 김희영, 丙소사이어티X김한결, 허나영 등 6팀으로 이들은 각각 3일간 무대를 꾸민다.

퍼포밍 일루션 ‘푼크툼’ 공연사진. (제공: 두산아트센터)ⓒ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19
퍼포밍 일루션 ‘푼크툼’ 공연사진. (제공: 두산아트센터)ⓒ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19

‘푼크툼’은 세번째 아티스트 EG의 작품으로, 찌름을 뜻하는 라틴어 punctionem에서 공연의 개념을 따 왔다. 창작자에 따르면 푼크툼이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관객이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오는 감정이나 인상을 자극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공연의 창작자 EG는 관객에게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그의 본명 이은결이라는 세 글자를 들으면 모두가 무릎을 탁 칠 것이다. 이미 유명세를 얻은 본명을 두고 예명으로 작품을 발표한 데는 그만의 속사정이 있다. 본명이 주는 마술사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 관객의 작품 관람에 영향을 미칠까 걱정돼 작가주의적 작품을 발표할 때는 EG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됐다.

퍼포밍 일루션 ‘푼크툼’ 공연사진. (제공: 두산아트센터)ⓒ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19
퍼포밍 일루션 ‘푼크툼’ 공연사진. (제공: 두산아트센터)ⓒ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19

EG는 본인 공연의 장르를 퍼포밍 일루션이라고 명명했다. 일반 공연예술과는 다르고, 그렇다고 마술쇼라고 부르기에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마임·모션그래픽·마리오네트 등을 활용한 종합예술을 선보인다.

공연은 ▲Pandora’s Box ▲Bag’s Gravity ▲The Last Carnival 등 12개의 단편 옴니버스로 엮였다. 각 단편 퍼포먼스에는 마술쇼에서 사용되는 매듭·손수건·상자 등이 사용된다. 뿐만 아니라 향·오징어·사과 등 일상적인 물품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빔프로젝터를 이용한 시각 예술이 진행되기도 한다.

이번 공연을 관람하기에 앞서 평소 TV 프로그램에서 본 이은결의 모습과 그가 보여준 마술쇼를 생각하고 간 관객이라면 공연을 보는 내내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는 생각보다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대부분의 퍼포먼스는 무성으로 진행되고 공연 시작 3분의 2가 훌쩍 지나 ‘The Reins’를 시연할 때 처음으로 소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퍼포밍 일루션 ‘푼크툼’ 공연사진. (제공: 두산아트센터)ⓒ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19
퍼포밍 일루션 ‘푼크툼’ 공연사진. (제공: 두산아트센터)ⓒ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19

공연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밝고 유쾌하기 보다 다소 진지하고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다. 여기에는 조명의 역할이 크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 위에는 형형색색의 조명 대신 노란 빛의 핀 조명만 사용된다. 어두운 무대 속 아티스트에게만 비취는 조명 덕에 관객은 공연의 내용·메시지에만 집중할 수 있다.

18일 공연 후 진행된 아티스트 토크에서 EG는 12개의 옴니버스를 하나로 관통하는 주제 ‘무의식’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어린 왕자를 읽고 난 후 느끼는 바가 어릴 때와 크고 나서 굉장히 다르더라”며 “책에 담긴 내용은 똑같았는데 내가 변하니까 책도 다르게 읽히더라. 이처럼 같은 사실을 가지고 서로의 무의식에 따라 다르게 보고 해석하는 공연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12개의 퍼포먼스를 본 후 관객 중 한 명은 인생을, 누군가는 이 시대의 정치상을, 또 다른 누군가는 종교적인 내용을 떠올렸다고 고백했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오는 감정이나 인상을 느끼면 된다는 작가의 말처럼 관객은 굳이 작가의 의도를 찾으려 하지 않고 본인이 느끼는 그대로를 마음에 담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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