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작년 한 해 유난히 큰 사고가 많았다. 스텔라데이지호 유족들과 제천참사 유족들은 지금도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 달라며 울부짖고 있다. 왜 사건 사고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일까. 

사건 사고를 분석해 보면 행정부, 국회, 사법부 같은 국가 기관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지 않아서 발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든 대형 참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국가의 부재’다. 마땅히 역할을 해야 할 국가가 안 보이는 것이다. 국가 자신이 하던 일을 규제개혁이라는 미명하에 ‘민간’에 떼어주거나 떠넘기는 행태를 보이기까지 한다. 김영삼 정부 이후 역대 정부는 공공의 영역은 축소하고 민간 영역은 확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9년 동안 정부는 국가의 공적 역할을 축소하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행동했다. 

국회는 어떤가. 임기 내내 자신의 지역구, 자신의 정당, 또는 국회의원 전체의 이해가 얽혀 있는 건 너무나 발 빠르게 처리하고 일반 국민들의 삶의 조건을 결정하는 민생 문제는 외면하기 일쑤다. 안전문제를 보면 사소한 문제는 때로 다루지만 기득권 구조, 특히 기업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되는 문제는 거들떠보지 않기 일쑤고 여론이라도 크게 일어 다루지 않을 수 없을 때는 지엽적인 문제를 손보면서 대단한 변화나 생기는 것처럼 연기를 잘도 한다. 

사법부 역시 재벌과 기업, 또는 국가에게 책임을 지우는 판결에 매우 인색하다. 사법 판결에서 재벌과 국가 기관은 보이지 않는 성역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세월호 판결만 하더라도 국가 기관에 책임을 지우는 내용의 판결은 전무하다. 123정장 김모 경위만 처벌을 받았을 뿐이다. 해경말단 간부 1명만 처벌하고 국가의 책임은 면책시켜 준 것이다. 검사에게 기소권을 독점시키는 기소독점주의라는 벽이 있긴 하지만 이 벽이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전향적인 판결이 나올지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다. 

제천 참사만 보더라도 ‘국가의 부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015년 의정부 참사와 판박이라는 게 중요하다. 당시 드라이비트와 필로티 건물이 문제의 핵심으로 언급됏는데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면피용 대책을 내고 끝냈다. 6층 이상 또는 22미터 이상의 신축 건물만 준불연재 이상으로 시공하는 것으로 법률을 제정하고 넘어가버린 것이다. 오래된 건물일수록 화재에 취약하고 불이 났다하면 참사로 발전될 수 있는 드라이비트 외장재 건물과 필로티 건물은 방치한 채 말이다. 국회와 국가는 왜 존재하나 하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는 ‘반안전 행태’이다. 

만약 의정부 참사 직후 ‘화재방지 범국민 대책 비상회의’ 같은 대책 기구를 만들고 안전사회를 향한 국민 에너지를 모아 모든 드라이비트 외장재를 뜯어내고 불연재로 교체하고 필로티 건물에 대한 근본 대책을 세웠다면 제천 참사는 날 수가 없었다. 제천 참사의 근본 원인이 드라이비트 외장재 문제와 필로티 건물 문제인데 자유한국당을 필두로 한 일부 야당은 정부 비난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의정부 참사가 날 때가 자유한국당 정부 시절이었다는 점을 잊고 현장 대응 잘못만 질타하기 여념이 없었다. 물론 현장 대응 잘못은 잘못대로 따져야 하지만 자유한국당 스스로 원인 제공을 했다는 반성부터 먼저 하는 게 순서라는 걸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제천 참사를 겪은 직후임에도 드라이비트 외장재와 필로티 건물 문제는 쟁점에서 사라져 버렸다. 제천 참사는 문재인 정부에 발생했다. 문재인 정부가 제천 참사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이비트 외장재 뜯어내는 결단을 하는 방향으로 국민의 힘을 모아 내고 법률 제정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안전사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는 정부가 될 것이다. 만약 의정부 참사, 제천 참사와 유사한 참사가 다시 터진다면 감당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세월호 아이들과 맺은 약속, 안전한 대한민국을 꼭 만들겠다”고 다짐하면서 “새해에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 국민안전을 정부의 핵심국정목표로 삼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 특히 대규모 재난과 사고에 대해서는 일회성 대책이 아니라 상시적인 대응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겠다”고 했다. 꼭 그렇게 하기 바란다. 하지만 이 내용은 제천 참사와 크레인 참사가 나가 전에 했어야 하고 신년사가 아니라 취임사 때 담았어야 할 내용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안전한 사회를 향해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쏟아야 한다. 국민의 힘과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 비상한 상황에 비상한 방법으로 대응해야 한다. 국가의 부재, 더 이상 안된다. ‘국가’부터 똑바로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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