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칼럼] 망 중립성 원칙, 이제 공론화할 때이다
[IT 칼럼] 망 중립성 원칙, 이제 공론화할 때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지난해 12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인터넷 규제의 기본 원칙인 망(網) 중립성(net neutrality) 정책을 공식 폐기했다. 2015년 오바마 행정부 때 법제화한 망 중립성 원칙을 2년 만에 폐기한 것이다. 글로벌 산업계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큰 충격이다. 망 중립성 원칙은 통신망사업자(ISP)들이 통신망을 타고 제공되는 서비스와 콘텐트나 인터넷 기업을 차단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미국 IT시장에는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고객별로 서비스 속도를 다르게 제공하거나 요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된 미국 통신사업자들은 반색이다. 반면에 이제까지 공짜로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빠르게 성장해 온 구글·애플·넷플릭스·페이스북·유튜브 같은 콘텐트 플랫폼 기업들은 이번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미국의 통신정책의 기조가 바뀌면서 한국에 미치는 파장도 만만치 않다. 국내 모바일 동영상 시장의 절반은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외국계가 차지하고 있다. KT나 SK브로드밴드 등 통신사업자들이 거액을 들여 통신망을 깔았지만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이나 콘텐트 기업이 더 이득을 보고 있다. 망 중립성 원칙이 깨지면 지금 무료로 이용하고 있는 동영상 플랫폼이나 소셜미디어가 유료가 되거나 서비스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 대신에 요금 인하 압박을 받는 통신사업자는 추가 수입과 각종 서비스에 대한 자율성이 증대되고 새로운 투자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인터넷기업과 통신사업자의 반응은 정반대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망 중립성 폐지가 인터넷 기업의 혁신과 스타트업의 도전 의지를 꺾어 생태계 전반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며 오히려 “4차 산업혁명의 뿌리가 될 망 중립성을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통신사업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등장으로 통신서업자의 문자 메시지 수입이 없어졌고 현재의 기술로도 언제든 음성통화를 데이터 통화가 대체할 수 있다”며 “통신망을 이용해 거대 기업이 된 플랫폼 사업자(구글·페이스북·네이버·카카오 등)와 갈수록 영업이익이 줄어들고 있는 통신사업자 간에 적정한 비용 부담을 검토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한다.

망 중립성 원칙이 오늘의 풍성한 콘텐츠와 인터넷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용량에 따른 합리적인 요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통신사업자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망 중립성을 놓고 콘텐츠업계는 찬성, 망사업자는 반대라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데이터가 하루가 다르게 폭발하는데다 과거와 달리 구글 등 망 이용 기업 영향력이 망 사업자를 이미 압도하고 있다. 인터넷의 개방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통신망의 황폐화도 막아야 한다. 망 중립성 폐기가 신생 기업의 성장동력을 꺾을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되는 부분이다. 통신 대기업이 데이터 제한, 속도 조절 등의 차별적 방법으로 신생 기업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용자 차별이나 불공정 문제도 망 중립성이라는 사전적이고 획일적인 규제보다는 정부의 사후 규제강화로 가능하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인 망 중립성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인터넷 등 IT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는 통신망 투자와 혁신적인 서비스와 콘텐츠 개발이 동시에 일어나도록 균형점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세계 최초로 수조원이 들어가는 5세대 통신망(5G)을 구축해서 통신망을 고도화하겠다는 한국에서 데이터 트래픽을 유발하는 정도에 따라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하는 원칙을 논의조차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세계 IT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미국의 거대한 움직임을 외면하면 뒤처질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공론의 장을 마련해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내에서 망 중립성 원칙은 2011년부터 시행해 오고 있지만 네이버·카카오는 자신들의 서버에서 통신망에 접속할 때 접속료 명분으로 통신사에 비용을 지불한다. 그러나 구글·페이스북 등 해외 거대 기업은 국내에 망 사용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네이버·카카오와 달리 서버를 국내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망 중립성을 논의할 때 국내외 인터넷 기업 간 역차별 문제도 점검해서 보완해야 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