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역사와 문화는 우리의 뿌리요 정신이다. 기합을 가하는 것을 ‘얼차려’라 한다. 정신은 곧 얼을 뜻하며, 정신이 나가 온전한 일을 하지 못해 결국 기합을 받게 되니, 그 기합을 통해 정신을 차려 똑바로 보고, 똑바로 하라는 뜻이 ‘얼차려’ 기합이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면 이 또한 정신 나간 민족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정신 곧 얼’을 찾아 세워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낳아 길러 준 부모를 안다. 혹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평생 동안 내가 누구며 어디서 생겼는지를 찾아 헤맬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민족 또한 어디로부터 와서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가 당연히 궁금해야 할 것이다. 그 역사가 곧 우리의 부모다.

용비어천가에 보면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뮐쌔(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므로)’라는 내용이 있다. 우리가 나무라면 우리의 역사와 문화는 그 나무를 지탱해 주는 뿌리다.

나무가 흔들리는 것은 그 나무의 뿌리가 약하든가 온전치 못해 흔들리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온전치 못함은 우리의 뿌리가 약하든가 온전치 못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즉, 뿌리 없는 나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이치에 도달하게 된다.

필자는 지금 마치 어떤 민족주의자인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겠으나 민족주의자도 역사학자도 아니다. 다만 이치와 순리를 말하는 평범한 국민이요 소시민일 뿐이다.

잠시 이해를 돕기 위해 종교적 관점에서 고찰해 보자.

경서 어딘가에 “이는 사람으로 신을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라”는 내용이 있다. 이 말은 알지 못하는 신들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형상화 해 여기저기에서 자신들도 모르는 신을 섬기던 이천년 전 그리스인들을 향해 저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사도 바울이 쟁론할 시 나온 말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내면엔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또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를 원하는 잠재된 내성이 있다. 이것이 바로 ‘종교성’으로 나타난다.

즉,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계는 불확실성의 세계인 것이다. 그래서 뭔가가 부족한 듯 영적 내지 육적으로 찾고 또 찾아 나서는 것이다.

또 경서에 보면 “너희가 지존자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가 지존자 즉, 신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신의 소생인 네가 범인(凡人) 즉, 일반 사람들 같이 죽어간다고 안타까워하는 내용이다. 같은 경서에 신(神)에 대해 정의 하기를 “말씀을 받은 자”라고 일컫고 있다.

손에 경서를 들고 있어도 뜻을 알 수 없으니 뜻을 읽어가는 게 아니라 글을 읽어가는 무도문장(無道文章)에 불과했으나, 어떤 계기를 만나 경서의 뜻을 알게 되니 곧 신의 뜻을 알게 된 것이고, 이에 ‘말씀을 받은 자’가 되며 신의 소생이 되는 순간이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지존자의 아들이며 신의 소생이며 범인이며 하는 대상들은 다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임도 알 수 있다. 다만 지존자 즉, 신의 말씀을 받았다면 신의 소생이 되고, 그 받은 말씀을 저버리면 다시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이 그렇게 살다가 죽어간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깨달음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누구냐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 얻기를 원하는 내면의 굶주림이 바로 종교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며, 종교적 또는 영적 부모를 알기를 원하는 신앙의 본질이 되는 것이다. 그 신앙의 본질을 바로 찾아 가고자 걷는 길이 신앙생활인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참된 역사와 문화를 찾아 나서는 것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며, 심지어 주요 산마다 쇠말뚝을 꽂아서라도 우리의 정신을 끊으려던 만행이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에겐 우수한 민족문화와 역사가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함에도 그동안의 교육정책은 역사를 도외시해 온 무지의 정책이었다. 

거짓된 역사와 문화이기에 참된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며, 참을 찾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우리의 권리요 의무인 것이다. 말로는 찬란하고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한다고 하면서 그 시작도 모르며, 무엇이 그토록 찬란한지도 모른 채 밑도 끝도 없이 그저 그렇게 인식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숱한 훼방과 왜곡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정신을 되찾게 하는 신의 섭리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 땅과 역사와 문화가 바로 우리의 부모요 정신이다. 이것을 바로 찾아 회복하는 것이 나를 바로 찾아 세우는 첩경이며, 나아가 이 나라와 인류의 영원한 미래임을 깨닫자. 거짓으론 아무것도 시작할 수도 없고, 거짓의 세상을 만들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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