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우리 한민족처럼 평화를 갈구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특히 3년간의 6.25 한국전쟁으로 아직 휴전상태인 한반도는 근래 북한의 핵무기개발로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할 수도 있는 ‘평화의 암흑지대’로 변해 가고 있다. 동시에 마침 인류의 대축제 평창올림픽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북한의 핵프로그램이 마지막 종착역을 향해 다가오는 순간 평창올림픽이 개막되는 것도 아마도 신의 섭리일 것이다. 대재앙의 상징 핵무기의 완성과 대축제의 상징 평화올림픽이 이렇게도 절묘하게 마주서는 일이 휴전상태의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쟁은 저물고 평화가 동 터 와야 하는 이때 양 재앙과 축제가 평창에서 만나는 기적이 준비되고 있다. 먼저 평화의 역사적 연원에 대해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 보자.

R.아롱에 의하면 ‘정치적 단위 간의 대립적 폭력형태가 어느 정도 계속적으로 정지되고 있는 상태’가 평화다. 6.25전쟁의 휴전기간이 전시냐 평시냐는 학설상 대립이 있으나, 전통적 국제법상으로는 전시로 본다. 사실 우리는 전시인지 평시인지 분명치 않은 시대의 박명(薄明) 속에 살고 있다. 현대 국제관계는 190이 넘는, 게임(game)의 주체인 각국이 지니고 있는 목적과 수단의 불확실성, 그 냉혹한 행동, 심각한 이념의 대립, 강렬한 적대감, 이 모든 것들로 상징되는 혁명시대 또는 종교전쟁을 방불케 한다. 전쟁과 평화는 서로 대(對)가 되는 개념이지만, 명확히 구별되는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게임의 각각 다른 측면이다. 

인류 역사는 전쟁상태의 기간이 평화의 그것보다 길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그 평화기간이라는 것도 어찌 보면 전쟁준비의 기간에 불과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평화는 전체적으로 볼 때 전쟁도 평화도 아닌, 역시 아롱의 표현을 빌면 ‘전쟁에 대신하는 위기라는 대체물’이 지배하는 평화라고 할 수 있다. 국가가 무력을 독점함에 따라 전쟁과 평화는 국가 간의 그것을 의미하게 되어, 국가 내부에서 일어난 무력충돌은 내란·내전·시민전쟁 등의 이름으로 일단 국가 간의 전쟁과는 구별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긴밀한 국제관계 하에서는 지구의 일각에서 일어나는 자그마한 내란도 곧 국제적 전쟁으로 발전하는 일이 허다하다. 내전의 국제화 또는 국제적 내전이라고 말하는 이 현상은 금세기의 특유한 전쟁형태이며, 평화문제를 생각할 때 간과할 수 없다. 

국제연합의 전쟁금지 조항은 전쟁을 금지하기는커녕 오히려 침략자의 낙인을 회피하려는 ‘선전포고 없는 전쟁’만을 증대시킬 뿐이다. 한때 세계정부 이론이 등장했는데, 대국이 각각 상대방을 신뢰하고 자국의 주권을 세계정부에 양도할 결의를 가지지 않는 한  하나의 이상은 될 수 있으나 현실은 될 수 없다. 금일의 평화주의자들은 평화문제가 단순히 핵무기의 폐지 내지는 군비축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야심·이익·경쟁심·불안·공포 등, 요컨대 신뢰의 문제이며 정치의 문제임을 도외시한다. 한때 유럽을 휩쓴 공산주의라는 유령은, 20세기에 하나의 실존(實存)으로서 전 세계를 이념상으로 분열시켜 화해할 수 없는 심연(深淵)으로까지 몰고 갔던 장본인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분석을 통해 계급투쟁과 전쟁과의 관계를 밝히면서 민족국가 내부에 잠재한 계급적 대립이 전쟁을 일으키는 최대의 원인임을 지적했다. 북한의 지배자들은 70년을 이어온 체제의 종말이 두려워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지만 그 핵무기가 민족과 지구의 종말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위험의식은 중시하지 못한다. 한반도는 단지 남과 북의 대결장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의 이해가 충돌하는 ‘세계의 DMZ’라는 사실을 왜 모른단 말인가. 

E.립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어느 정치적 실체가 주권적으로 존재하는 그 상호간의 분쟁은 항상 전쟁에 의해서만 해결됐다고 하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이 철저하게 분열된 국제사회에서 각국은 오로지 일반적 평화 아닌 자신의 개별적 평화만을 추구하는 것이 현실이며, 강대국들은 이미 인류를 그 몇 배라도 절멸시킬 수 있는 가공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타 대부분의 중소국들도 잠재적 핵보유국이 되어가고 있다. 평창올림픽에 미국의 부통령이 오고 북한의 최룡해 내지 김여정이 온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최룡해는 북한의 부통령이며 김여정은 김정은의 대리인이다. 이들은 무조건 평창에 나타나 북미대화의 물꼬를 트고 돌아가야 한다. 또 우리 문재인 대통령을 청와대로 예방해 남북 대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평화는 하나의 옵션이 아니라 절체절명의 목표가 돼야 한다. 신은 우리 민족에게 그런 의미에서 평창올림픽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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