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공연 장면. (제공: 쇼미디어그룹)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공연 장면. (제공: 쇼미디어그룹) 

설명 부족해 주인공 포의 천재성 드러나지 않아

‘까마귀’ 등 추가된 넘버, 원작 음악과 조화 이뤄

[천지일보=이혜림·지승연 기자] ‘미국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19세기 미국 최고의 시인이자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의 삶이 무대 위에 그려진다. 귀를 즐겁게 하는 록 음악으로 가득 찬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가 오는 2월 4일까지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된다. ‘에드거 앨런 포’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에드거 앨런 포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어난 사건을 담은 이야기다.

‘에드거 앨런 포’는 영국 록 그룹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 멤버 에릭 울프슨의 음악과 만나 뮤지컬로 제작됐다. 1976년 데뷔한 에릭 울프슨은 첫 앨범의 주제로 포를 선택할 만큼 비운의 천재 작가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이번 한국 공연은 2016년 초연된 후 1년 4개월 만에 재연된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포’의 어머니는 그가 2살을 채 넘기기도 전에 숨을 거둔다. 이후 양부의 손에서 자란 포는 신경쇠약을 앓는 등 불행한 삶을 산다. 성인이 된 후 포는 새로운 스타일의 글을 써 대중의 찬사를 한 몸에 받는다. 어느 날 포는 잡지사 사장의 부탁을 받고 필라델피아 문학계 큰손 ‘그리스월드’의 글에 대해 “평가할 가치가 없다. 예술을 모른다”고 비평한다. 이에 분노한 그리스월드는 자신의 재력·명성을 이용해 포의 삶을 철저히 망가트릴 것을 결심한다.

작품은 포의 굴곡 많은 인생을 풀어나간다. 주인공을 극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하기 위한 서사와 경쟁자, 사랑하는 여인까지 뮤지컬의 요소가 모두 갖춰졌다.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공연 장면. (제공: 쇼미디어그룹)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공연 장면. (제공: 쇼미디어그룹)

“가장 먼저 음악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이라는 노우성 연출의 설명처럼 넘버들은 뮤지컬을 가득 채워 작품을 빛나게 한다. 26개의 넘버는 다소 암울한 주인공의 서사를 고음과 저음을 넘나드는 멜로디로 거세게 밀어붙인다.

작품에 사용되는 넘버는 록을 바탕으로 했다. ‘모르드가의 살인사건’ ‘매의 날개’ ‘함정과 진자’ 등 에릭 울프슨의 에너지 넘치는 음악과 ‘까마귀’ ‘다른 꿈’ 등 김성수 음악 감독이 새로 만든 노래들은 이전 넘버와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탄탄한 가창력을 자랑하는 배우들의 연기까지 더해지니 관객의 귀는 그야말로 호사를 누린다.

문제는 개연성이다. 부실한 설명 탓에 인물에 대한 이해가 어렵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포의 천재성이 드러나지 않으며, 당시 그의 고뇌도 공감되지 않는다. 이는 라이벌 구도를 그리는 그리스월드가 장면을 연결하는 해설자로 등장한 탓이다. 그리스월드는 관객에게 포에 대한 부정적인 말만 늘어놓는다. 관객은 대중을 연기하는 앙상블의 대사로 내용을 유추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설자인 그리스월드에 대한 이해가 쉬운 것도 아니다. 포를 향한 격노가 설명되지 않아 그리스월드는 자신의 글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상대를 죽이려고 하는 치졸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공연 장면. (제공: 쇼미디어그룹)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 공연 장면. (제공: 쇼미디어그룹)

지나치게 객관화된 시각으로 인해 포의 내면을 알 수 없으니 ‘엘마이라’ ‘버지니아’ 등과의 멜로라인도 이해되지 않는다. 160분의 짧은 러닝타임 안에 한 인물의 일대기를 모두 담으려던 제작진의 욕심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지난해 12월 30일 공연에서는 배우 윤형렬이 ‘포’로, 정상윤이 ‘그리스월드’로 분했다. 2016년 한국 초연 당시 그리스월드를 연기했던 윤형렬은 재연 공연에서 역할을 포로 바꿨다. 모든 넘버를 특유의 저음으로 부르는 윤형렬은 중후한 목소리를 중후한 목소리로 관객을 압도한 후 클라이맥스에 다다라서는 고음을 멋지게 소화해 관객에게 전율을 느끼게 한다.

정상윤은 포에게서 볼 수 없는 귀엽고 잔망스러운 매력을 뽐내며 무거운 극의 분위기를 조절한다. 그러다가도 포를 견제하는 장면에서는 누구보다 얄밉고 비열한 그리스월드가 돼 관객의 공분을 산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