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오이도, 섬인데 왜 섬이 아닐까
[쉼표] 오이도, 섬인데 왜 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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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 명소인 오이도 빨간등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12
시흥 명소인 오이도 빨간등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12

서울서 대중교통으로 2시간 거리
조선 정조 때부터 오이도라 불러
원래 육지에서 4㎞ 떨어진 섬

일제 때 염전 만들며 육지와 연결
아직도 섬(島) 명칭 계속 사용해
신석기문화 담긴 패총 발견 되기도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푸른 바다만큼 마음을 탁 트이게 만드는 곳이 있을까. 올 한해를 어떻게 보낼까 아직 결정을 못 한 이들은 새로운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하고 싶을 것이다. 이럴 때 가기 좋은 곳이 바다다. 하지만 서울에서 바다는 멀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는 없다. 서울에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바다가 있으니, 바로 오이도다.

서울역에서 약 1시간 20분 거리에 있는 오이도역. 여기서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들어가면, 시원한 바람이 부는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버스에서 내리니 바로 바다가 보였다. 해산물을 파는 가게들도 주위의 즐비해 있다. 방파제와 갈매기도 찾아오는 이를 반겼다. 골목을 빠져나가니 저 멀리 ‘빨간 등대’가 눈에 띄었다. 빨간 등대는 시흥의 명소 중 하나로 ‘어촌체험 관광마을 조성사업’ 일환으로 건립됐다. 입장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하지만 그만큼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저 멀리 송도국제도시가 보였다. 외국인 투자가의 기업 활동과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국제기업도시인 송도의 풍경은 이곳과는 달랐다. 저곳은 높은 빌딩의 화려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정겨움은 전형적인 어촌마을인 오이도에 더 묻어 있는 듯했다.

오이도 빨간 등대 앞으로 바다가 보인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12
오이도 빨간 등대 앞으로 바다가 보인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12

◆서해안서 규모 가장 큰 패총 분포지역

이쯤 되니 오이도의 역사가 궁금해졌다. 오이도의 옛 모습은 어땠을까. 조선 초기에 이 섬은 오질애(吾叱哀)라고 불렀다. 이후 성조 때에 오질이도(吾叱耳島)로 불렸다가, 정조 때에 현재의 이름인 오이도라 불리게 됐다.

옥구도와 옥귀도를 함께 오질애섬으로 부른 것이 오질이도가 됐고 그것의 줄임말로 오이도가 된 것이다. 즉 한자표기의 오이(烏耳)를 음차한 것이다.

오이도는 인근의 옥구도와 함께 일명 옥귀섬(玉貴島)이라고 불렸다. 예전에 어느 임금이 배를 타고 가다가 이곳에 표류했는데, 한 어부가 옥(玉)으로 만든 그릇에 물을 바치자 임금이 깜짝 놀라 귀(貴)히 여기고 옥귀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이도 빨간 등대 인근에 선박해 있는 어선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12
오이도 빨간 등대 인근에 선박해 있는 어선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12

오이도(島)는 섬이면서도 섬이 아니다. 원래 오이도는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서쪽 바닷가 지역으로 육지에서 약 4㎞ 떨어진 섬이었다. 1922년에 일제가 조선의 소금을 헐값에 강탈할 목적으로 염전을 세웠다. 또 이곳과 안산시 사이에 제방을 쌓았는데 이때부터 섬이 아닌 섬이 됐다. 일제가 육지와 연결하기 위해 바다를 일부 메워 육지화가 됐지만 오늘날에도 섬(島)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예전까지는 안말을 중심으로 가운데살막, 신포동, 고주리, 돌주리, 배다리, 소래벌, 칠호 등 자연마을이 있었지만 도심 개발화로 모두 폐촌이 됐다. 하지만 섬 지역 일부를 매립해 조성한 이주단지로 모두 이전하게 되면서 생활의 터전을 이어나가게 됐다.

오이도는 서해안에서 규모가 가장 큰 패총 분포지역이기도 하다. 패총이란 해안·강변 등에 살던 선사시대인이 버린 조개·굴 등의 껍데기가 쌓여서 무덤처럼 이뤄진 유적을 말한다. 패총은 신석기문화의 남북관계의 흐름을 알 수 있고 내륙지방과의 남북교류관계, 서해안 갯벌 지대의 신석기시대 해안 적응과정을 알려주는 유적이다. 또 조개껍질층 위에 삼국시대 조개껍질층이 퇴적된 양상을 보이며, 초기철기시대,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조개껍질층도 확인됐다. 이처럼 패총에는 시대별로 층층이 유물이 남아 있어 당시 생활상을 알 수 있다.

해산물을 판매하는 상인의 모습, 예로부터 오이도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이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12
해산물을 판매하는 상인의 모습, 예로부터 오이도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이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12

◆바다보며 시 한수 읽기도

빨간 등대에서 내려와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빨간 등대 앞 방파제 위에는 천막이 즐비해 있었는데, 오징어·해삼·멍게 등 각종 해산물을 팔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인 관광객은 싱싱하고 큰 해산물을 구경하느냐 정신이 없었다.

“이거(오징어) 꿈틀꿈틀해.” 한 아이는 살아 움직이는 오징어를 보며 ‘까르르’ 웃어댔다. “멍게 참 좋네요.” 해산물을 둘러보던 한 시민은 싱싱한 멍게를 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현금거래를 하기도 했다.

방파제 아래에는 몇 대의 어선이 선박해 있었다. 거친 파도를 헤치고 먼바다까지 나가 고기를 잡아 올렸을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과연 어촌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12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12

빨간 등대 옆으로 ‘옛 시인의 산책길’이 이어졌다. 바다를 보며 읽은 시 한 수는 여유로움을 안겨줬다. 산책길 중간쯤에는 ‘하얀나무’가 있다. 오이도의 포토존으로 ‘생명의 나무’라고 불린다. 8.2m의 높이에 지름 15m되는 나무는 오이도가 가진 역사와 이곳에 머물렀던 생명, 사람들의 흔적을 되살리고 후대에 길이 알리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졌다.

길을 더 걷다 보면 노란 구조물이 길게 이어진 ‘황새바위길’이 나온다. 밀물과 썰물 차이에 따라 상하로 움직이며 총 길이 200m인 부교로 만들어졌다. 이곳은 갯벌 생태를 직접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밑물 때는 바다를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바다 산책로다. 밑물 때를 잘 맞춰오면 갯벌생물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바다에서 만끽하는 하루 동안의 여유. 바다를 보며 세우는 올 한해의 모습에 마음이 설렜다.
 

황새바위길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청년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12
황새바위길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청년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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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식 2018-01-12 16:45:39
지하철만 타면 금방 갈수 잇는 곳인데 한번도 못가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