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다. 그런 자존심은 박근혜 정부에서의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 때 이미 산산조각이 나버린 상태다. 경술국치 이후 10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우리는 피해자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굴욕적인 협상에 임했던 것 자체부터 얼굴이 화끈거리는 치욕이었다. 지난 100여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으며, 또 역사에서 무슨 교훈을 배웠느냐고 물어도 할 말이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 가지 위안은 있었다. 국민으로부터 탄핵 당한 그런 무능한 정부가 했던 일이기에 일본과의 합의든 뭐든 간에 큰 의미나 가치를 둘 필요가 없다는 위안이었다. 다시 ‘반듯한 정부’가 들어서서 지난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으면 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문재인 정부마저 이럴 것인가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은 다를 줄 알았다. 더욱이 촛불민심으로 당선된 대통령이 아니던가.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야당 대표 때나 대선 후보 때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국민의 권리’를 포기했다며 굴욕적인 협상을 강하게 비판했다. 심지어 “양국 정부는 축배를 들고 웃었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왜 두 번 죽이냐고 울었다”라며 “피해자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립서비스와 돈으로 일제가 저지른 반인륜 범죄에 면죄부를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국회의 동의조차 없었으니 ‘무효’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렇게 결연한 의지를 보여줬던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어떤 입장일까.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전혀 다른 얘기를 했다. “한일 양국의 공식 합의를 부인할 수 없다”며 역사 문제와 양국 간 미래 협력 문제를 분리해야 한다고 했다. 심지어 일본이 건넨 10억엔에 대해서도 서로 협의해서 좋은 방향으로 해결하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이 무슨 얘기인가. 마치 가해자인 일본 측의 입장을 보는 듯한 발언에 다름 아니다. 결국 박근혜 정부 때의 그 굴욕적 합의를 존중하겠다는 뜻 아닌가. 한때 언급했던 ‘면죄부’나 ‘재협상’ ‘무효’ 등의 그런 의지는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실망도 보통 실망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이런 실망은 단순히 말이 바뀌어서가 아니다. 말은 바뀔 수 있다. 또 상황이 바뀌면 공약도 달라질 수 있다.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하고 필요하면 사과도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중요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가 명료하지 않다는 점이다.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그리고 다분히 원론적이고 당위적인 얘기로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촛불국민에 대한 화답인가. 쟁점은 모호하게 넘어가고 불리한 것은 숨기기에 바빴던 박근혜 정부와 비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특히 외교적 발언과 국가 간의 관계는 ‘일관성’과 ‘엄중함’이 있어야 한다. 그때그때 말이 달라지고 시류에 흔들리는 듯한 언행은 소탐대실의 전형에 다름 아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라면 몰라도 ‘피플파워’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이러면 정말 곤란하다. 우리 국민은 물론이요, 중국이나 북한 심지어 미국과 일본 정부가 문 대통령의 이런 모습을 어떻게 볼지, 참으로 그것이 걱정되고 또 아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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