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집을 기준으로 사람의 삶이 구분된다. 집을 구분해 보자. 우선 유주택자, 무주택자로 구별이 된다. 큰 집, 작은 집으로 분류되기도 하고 대궐 같은 집, 콧구멍만한 집으로 구별되기도 한다. 지상에 있는 집과 지하 반지하방으로 구분되기도 하고 정상적인 집과 옥탑방으로 구별되기도 한다. 정부의 분류 기준으로는 주택과 비주택, 최저기준 충족가구와 최저기준 미달가구가 있다. 도시가스와 기름보일러로 구별되기도 한다. 주택 생활자와 거리생활자로 구별되기도 한다. 정상적인 집과 하자있는 집, 외풍이 없는 집과 있는 집, 비가 새는 집과 새지 않는 집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독자께서는 어떤 쪽을 선택하시겠는가?   

주택 문제에서 정부의 역할이 큼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다수 국민의 주거 문제 해결에는 관심이 없고 스스로의 권한과 권능을 강화하는 데 여념이 없는 정부와 주거권 보장과 주거복지 실현에 앞장서는 정부가 있다면 사람들은 어떤 쪽을 선택할까. 정부 못지않게 책임이 큰 곳이 국회다. 국회는 주거 관련 법률을 만드는 기관이다. 좋은 법은 만들고 나쁜 법은 없애야 하는데 좋은 법은 없애고 나쁜 법은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법부 역시 중요한 곳이다. 주거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일관되게 하는 사법부를 가진 나라와 주거권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온갖 논리를 생산해 내는 사법부를 가진 나라 가운데 어느 쪽이 행복할까.   

한국에서 집은 자산이다. 한국의 가계 자산의 70~80%가 부동산이라고 한다. 개인이 가진 자산에서 땅과 집, 건물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현실이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가장 큰 부작용은 집을 삶의 보금자리로 보지 않고 투기수단으로 본다는 점이다. 그동안 집값과 전월세가가 폭등에 폭등을 거듭한 것은 집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그 결과 국민 대다수가 마땅히 누려야 할 주거의 권리와 주거안정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집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러 지역에서 장애인 관련 시설이 들어오는 걸 ‘결사반대’ 하는 걸 많이 본다. 서울시 강서구 지역 주민들 앞에서 무릎 꿇은 장애인 부모들의 사진은 지금도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장애인 부모가 왜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하고 한번쯤 되뇌었을 것이다. 가장 앞세우는 이유가 ‘집값 하락’인데 아마도 집 소유자들은 집값 하락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서를 교묘히 파고든 ‘투쟁전술’ 아닌가 싶다. 장애인 시설이 들어서면 안전이 우려된다는 얘기들도 나오는 걸 보면 한국은 더불어 사는 사회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사회가 돼 버린 듯하다.  

2012년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행복주택을 철도부지위 인공대지에 20만호 건설하겠다고 공약했다. 땅값이 안 드니까 시세의 30~50%에 공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철도부지 위에 지은 행복주택’은 허언이 됐다. 인공대지 조성비가 땅값보다도 비싸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철도부지가 물 건너간 뒤 국가 소유의 유수지 같은 곳에 행복주택을 지으려 했지만 주택소유주들을 대변한다는 사람들이 강력히 저항해 좌절됐다. 서울시에서 강남의 교통 편한 곳에 행복주택을 지으려고 할 때도 집값 하락을 들어 격렬한 저항을 했다. 우리는 여기서 묻게 된다. 집은 무엇인가? 

집은 사람들이 사는 곳인가, 돈을 벌기 위해 사는 대상인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면 사람들이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한국 세입자들에게 가장 힘든 문제는 무엇일까. ‘집 살 가능성이 점점 멀어지는 것’이라고 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전세가 폭등과 늘어난 월세 전환’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짐작을 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한 곳에서 계속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 일본처럼 세입자가 같은 셋집에서 계속 살 수 있는 제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들 나라는 집을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보기 때문에 세입자의 주거인권을 보장하는 데 철저하다. 한국에서 2년마다 이사 불안에 시달리게 법률을 만들어 놓은 것은 주택 소유주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주거권은 무시하고 소유권은 절대시한 결과다.  

세입자들이 살고 싶을 때까지 한 곳에 사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국 세입자들은 월세 내고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금을 내고 있으면서도 권리는 못 누리고 있다. 법이 소유권자인 임대인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법은 숙명이 아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계속거주’ ‘계속영업’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바꾸어 인권을 꽃피우고 서민들 생활안정도 가져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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