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이제 아크로폴리스를 내려온다. 현관인 프로필라이아에서 아테네를 내려다보니 오른편 아래 바위에 사람들이 꽤 많다. 현지 가이드에게 물으니 아레오파고스란다. 아레오파고스라면 사도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때 설교한 곳 아닌가. 

서둘러 서문 출구로 내려가서 오른편으로 조금 가니 아레오파고스 언덕(Areopagus Hill)이 있다. 언덕에 오르니 바위가 상당히 미끄럽다. 여기에서 보니 아크로폴리스 프로필라이아가 잘 보인다. 프로필라이아 오른편에 있는 아테나 니케 신전과 왼편의 아그리파 기념비도 제대로 볼 수 있다.    

아테나 니케 신전은 아테네 시민들이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세운 신전이다. 그런데 전쟁에서 늘 승리를 바라던 아테네 시민들은 승리의 여신이 아무데도 가지 못하도록 날개를 잘라내고 이 신전에 모셨단다. 

아그리파 기념비는 원래 BC 178년 페르가몬 왕국의 에우메네스 2세가 판 아테나 제전의 전차경기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세운 것인데, BC 27년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 사위인 아그리파에게 바치는 기념비로 바뀌었다. 

이윽고 아레오파고스 언덕 안내판을 보았다. 여기에는 3가지가 적혀 있다. 첫째, 아레오파고스의 위치, 둘째, 아레오파고스의 유래, 셋째, 사도 바울의 전도와 그리스 최초의 주교 디오누시오이다.

안내판 첫 부분에 “아레오파고스는 해발 150미터의 아크로폴리스와 프닉스(Pnyx), 고대 아고라(Agora) 사이에 있는 해발 115미터의 언덕”이라고 적혀 있다. 즉 아크로폴리스가 아테네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그 다음에 아레오파고스, 그보다 낮은 곳에 프닉스와 콜론 아고라가 위치하고 있다. 

아테네도 처음에는 왕이 다스리는 나라였다. 그러다가 귀족들이 왕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도시를 다스렸고, 귀족정치를 한 곳이 바로 아레오파고스였다. 

귀족정치 제도를 아레오파고스평의회라고 한다. 아레오파고스 평의회는 임기 1년의 아르콘(행정관)을 선출했고, 정치와 재판을 관장했다. 아르콘은 아테네 시민에 의해 일정한 재산을 가진 귀족들 가운데 선출됐는데, 아르콘은 1년의 임기가 끝나면 아레오파고스 평의회의 종신직 의원이 됐다.

프닉스는 그리스어로 ‘숨 막히는’이라는 뜻인데, 민회(民會)가 열렸던 아테네 민주제가 탄생한 역사적 장소이다. 아고라(Agora)는 ‘함께 모이다’라는 의미의 집회 장소이다. 이곳은 시장(市場)이었고 토론 장소여서 민주정치 1번지가 됐다.  

그러고 보니 아크로폴리스는 신권 정치, 아레오파고스는 귀족정치, 프닉스와 아고라는 민주정치의 영역이다. 그리스 정치가 높은 언덕에서 중간지대로, 다시 낮은 곳으로 이동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안내판 두 번째 부분에는 ‘아레오파고스는 아레스에서 유래했다’고 적혀 있다. 아레오파고스는 ‘아레스(Ares)’와 ‘파고스(언덕)’의 합성어로 ‘아레스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아레스(로마식으로는 마르스)는 잔혹하고 살육을 좋아하는 전쟁의 신이었다. 한번은 포세이돈의 아들 할리로티오스가 아레스의 딸 알키페를 겁탈하려 했다. 이에 격분해 아레스는 할리로티오스를 때려 죽였다. 그러자 포세이돈은 신들의 법정에 아레스를 고발해 이곳에서 재판이 열렸다. 신들은 아레스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후 아레오파고스는 살인·신성모독·방화 등을 다루는 재판소가 됐고 오늘날에도 그리스 대법원을 ‘아레오파고스’라고 부른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