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입원 절차 악용 사례 잇따라
“입원 과정 강화… 제도 정비해야”

[천지일보=백하나 기자] A씨(23, 남)는 지난해 낯선 남자들에게 붙잡혀 정신병원에 수감됐다. A씨를 정신병원에 격리시킨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부모. 평소 집에만 틀어박혀 게임을 하던 그를 못 마땅히 여긴 부모가 교화시킬 목적으로 정신병원을 선택한 것이었다.

A씨는 자신이 인격장애 판정을 받은 정도였다며, 수감 당시 약을 먹고 늘어져 잠만 잤다고 말했다. 별다른 증상이 없던 그는 격리 7개월 만에 퇴원 조치를 받았다.

부모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정신병원에 간 사례도 있다. B씨(29, 여)는 지난해 아버지로부터 5개월간 방에 감금당하고 침대에 묶여 구타를 당하는가 하면 정신병원 생활까지 경험했다. 그는 정신병원에서 탈출해 현재 법원에 진정을 넣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가족 간에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신병원을 악용하는 사례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는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절차가 매우 간단해 악용되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도 C정신병원의 한 관계자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위해서는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가 필요하고, 정신과 전문의가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유를 병원 측에 전달한다”며 “면담을 통해 입원할 만한 질환이 있는지 판단해서 입원 절차를 밟는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절차는 정신보건법 24조에 따른 것이다. 정신보건법 24조는 정신의료기관 등의 장은 정신질환자의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가 있고, 정신과 전문의가 입원 등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 한해 입원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보건복지센터의 한 상담사는 “가족 중 한 명을 정신병원에 감금시키기 위해 가족이 동의서를 작성하는 게 어려운 일이겠느냐”며 “정신과 진료도 부모 동의만 있으면 진단이 쉽게 나오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입원 절차가 악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식은 죽 먹기라는 말이다.

실제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2008 정신보건시설 입원환자 비율’에 따르면 자의입원환자는 9387명(13.8%), 비자의입원은 5만 8723명(86.2%)에 달했다. 정신보건법 제24조로 입원하는 환자는 5만 425명으로, 무려 74%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관련 이진백 국가인권위 장애인차별 조사과 조사관은 입원과정을 더욱 강화하고 제도적인 측면을 정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조사관은 “입원 시 진단입원과 입원치료로 나눠 입원자가 정신질환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이 안 설 때 1차적으로 진단입원을 하고, 면밀히 검진해서 2차 입원 치료하는 단계를 밟는 방법도 있다”며 “입원자에게 입원 사유와 권리를 알리지 않을 경우 병원 측에 벌칙을 주는 방안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시설에 감금돼 인신의 자유를 침해당했을 경우 법원에 ‘인신보호청구’를 신청해 구제받는 길이 마련돼 있다며, 이 같은 권리에 대해서도 병원이 충분히 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관계자는 “악용사례를 막기 위해 보호의무자 동의를 1인에서 2인으로 늘리고 보호의무자 범위 중에서 배우자,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는 현행과 같이 그대로 두되, 생계를 같이하는 친족의 범위를 ‘8촌 이내’에서 ‘4촌 이내’로 축소해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요건을 강화했다”며 “정신보건시설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실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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