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전 주변 무분별한 주차
“송수구, 눈에 띄게 배치해야”
의식개선 위한 홍보활동 필요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제천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보름이 지났지만 소화전 바로 옆에 주차를 하거나 물건을 쌓아두는 등 소방안전시스템과 시민의식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기자는 지난 8일 서울역, 서울시청, 숙대입구 등 서울 중구와 용산구 일대에 위치한 30여개의 소화전을 무작위로 찾아다니며 위반 사례를 살펴봤다.
소화전은 강한 수압으로 초기 화재를 진압할 수 있도록 만든 소방시설이다. 이는 고층 건물 내부에 불이 났을 때 소방용수를 공급하는 연결 송수구와 소방 펌프차의 물이 떨어졌을 때 사용하는 옥외 소화전, 화재 초기 진압을 위해 건물 내 복도에 설치하는 옥내 소화전 등이 있다.
도로교통법(제33조)에 따르면 소방용 기계나 소화전, 송수구 등으로부터 5m이내에는 주차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날 확인한 소화전들 가운데 건물 1층 주차장 쪽 벽면에 설치된 연결 송수구의 경우 대부분 차량이 주차돼 있어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앞서 제천 화재 발생 당시 현장에 출동한 소방차들도 불법주차 된 차량에 막혀 접근에 애를 먹기도 했다. 지난 2일에는 불법주차를 막기 위한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간 바 있다.
숙대입구역 근처에서는 한 생수배달원이 연결 송수구 바로 옆에 차를 대고 생수를 배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소화전 반경 5m이내에는 주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전혀 몰랐다. 오늘 처음 들었다. 지금 바빠서 빨리 가봐야 한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불법주차로 인해 소방차 진입경로를 확보하지 못하거나 소화전 앞 주차로 화재 초기 진압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대규모 화재 참사가 또 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 이에 소화전에 대한 시민인식과 소방안전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는 의견이 나왔다.
권민정(29, 여)씨는 서울시청 인근 건물 주차장에 설치된 송수구를 보며 “지금 이 상태로는 차들에 막혀서 송수구가 있는지도 모르겠다”며 “건물을 지을 때부터 설계도면을 잘 짜서 송수구를 눈에 띄는 곳에 배치시켜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구에서 온 최지원(19, 여)양은 “소화전에서 5m 띄워서 주차해야 한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며 “소화전 옆에 ‘반경 5m이내 주차금지 알림판’을 붙여 놓아 알아보게 하거나 소화전에 대한 홍보활동을 더 많이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최양은 “아직 많은 사람들이 소화전 반경 5m이내엔 주차가 안 된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며 “시민들도 소방안전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양현정(22, 여, 서대문구)씨는 “(송수구를) 건물 1층 주차장 옆 다른 공간에 설치해도 될 것 같다”며 “혹시라도 불이 났을 때 차량이 주차돼있으면 소방차들에겐 아주 불편할 것이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차주들도 소화전을 위한 공간을 확보해 놓는 시민의식이 필요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지난 2일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와 관련해 사고예방 및 대형 인명피해 재발을 막고자 서울시내 영업 중인 모든 목욕탕 등 총 319개소에 대해 불시 소방특별조사를 실시했다.
단속결과 319개소 중 120개소에서 ▲피난통로에 합판을 설치해 피난상 장애 유발 ▲옥내 소화전에 쓰레기통 설치 ▲방화문에 이중 덧문(유리문) 설치 등 330건의 위법사항들이 적발됐다.
권세준 회현119안전센터 소방관은 “화재 발생 시 좁은 골목에서는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모르기 때문에 집 앞 주차는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며 “비상 소화전은 쓰레기통이 되는 경우가 있어 시민의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어 권 소방관은 “소방차 진입과 소화전 접근을 어렵게 하는 불법주차 방지를 위해 홍보활동이나 캠페인 등을 진행해 시민에게 알릴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