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관람하는 시민.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8
전시를 관람하는 시민. 운현궁 노안당 현판을 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8

 

서울역사박물관, 운현궁 전시
노안당 등에 담긴 이야기 공개

통치체제 재정비 등 정책 논의
고종·명성황후 가례 올리기도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의 사가로 알려진 ‘운현궁(雲峴宮)’. 서울 창경궁과 종묘와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이곳을 찾는 발길이 많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 장소로도 유명한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성향과 생애가 담겨 있는 장소다.

눈으로만 보면 건물 채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역사를 알고 나면 깊은 깨달음을 얻는 곳이 바로 운현궁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역사박물관의 ‘운현궁, 하늘과의 거리 한자 다섯 치’ 전시를 통해 흥선대원군과 운현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여다봤다.

 

운현궁 노안당(출처: 서울역사박물관)ⓒ천지일보(뉴스천지)
운현궁 노안당(출처: 서울역사박물관)ⓒ천지일보(뉴스천지)

◆흥선대원군 생애 담긴 운현궁

운현(雲峴)은 ‘구름 재’라는 뜻으로 조선 말기 황현이 쓴 ‘매천야록’에는 서운관(훗날 관상감으로 개칭) 앞 고개에 위치한 궁으로 기록돼 있다. 운현궁은 고종이 즉위하기 전 12세까지 살았던 잠저이기도하다.

고종 즉위 후에는 임금의 잠저라는 이유로 ‘궁’의 명칭을 받아 본격적으로 운현궁이라 불렸다. 이와 함께 확장·증축 등이 진행됐고 고종이 즉위한 이듬해(1864)에 노락당(老樂堂)과 노안당(老安堂)이 준공됐다. 1870년에 이로당(二老堂)이 완공됐다.

◆정치의 장 ‘노안당’

노안당은 운현궁의 사랑채다. 이곳은 고종 즉위 직후인 1864년에 건립됐다. 당호는 ‘노자(老者)를 안지(安之)하며’라는 논어의 글귀에서 따왔다. ‘아들이 임금이 되어 좋은집에서 노년을 보내게 돼 흡족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곳은 흥선대원군이 통치체제재정비, 경복궁 중건, 서원철폐 등주요 정책을 논의한 곳이다. 실제로19세기 중엽 조선은 세도정치로 인한 정치 기강의 문란, 삼정의 폐해 등으로 전국적인 농민 봉기가 발생했다. 이 시기 권력을 잡은 흥선대원군은 여러 개혁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민생을 안정시키고자 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 초상 (출처:서울역사박물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8
흥선대원군 이하응 초상 (출처:서울역사박물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8

고종이 친정을 선포하기 이전 권력의 핵심인물이었던 대원군은 주로 운현궁에서 권력을 행사했다. 노안당은 다양한 인사가 모이는 실질적인 정치의 장이었다. 국왕의 명령보다 강한 권위와 힘을 가졌던 ‘대원위분부(大院位分付)’가 내려진 곳이기도 하다.

또 집권과 실각을 반복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난을 치던 예술적 공간이었다. 대원군은 추사 김정희(金正喜)를 스승으로 해 서화를 익혔는데, 30대에 이미 김정희로부터 ‘예서와 묵란은 조선의 제일’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평생 난(蘭)을 유일한 소재로 다뤘으며, 이후 노근란(露根蘭), 석란(石蘭) 등을 그리며 자신의 개성적인 화풍을 이뤄갔다. 대원군이 임종을 맞은 곳도 이곳 노안당이다. 대원군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라 할 수 있다.

◆‘노락당’과 ‘이로당’

노락당은 운현궁의 가장 중심에 있는 안채다. 1864년 노안당과 함께 건립됐다. 노락당의 당호 노(老)자가 대원군의 본인을 뜻함과 노안당의 당호로 미루어보아 ‘아들이 왕이 돼노자(老子)는 즐겁다’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곳은 대원군의 부인 부대부인 민씨의 생활공간이자 결혼·회갑 등 큰 가족행사가 이뤄졌다. 또 명성황후가 궁중 예법과 가례 절차를 교육받고 가례를 치른 의례 공간이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는 1866년 3월에 행해졌다.

이로당은 노락당과 함께 운현궁의 안채 역할을 하던 건물이다. 1869년 추가로 지어졌다. 이로(二老)는 흥선대원군과 부대부인 민씨를 지칭하는 것으로 ‘두 노인을 위한 집’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곳에서 대원군은 부대부인 민씨와 짧은 노년의 기간을 보냈다.

운현궁에는 현존하는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이외에 다양한 건물이 있었다.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영화루, 회죽헌이라는 건물명도 기록돼 있고, 은파재, 수작루, 연당 등이 기록된 현판도 운현궁에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 건물의 위치나 규모는 관련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또 흥선대원군의 별서는 석파정, 아소당, 시흥산장, 직곡산장 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운현궁 소유의 논, 밭 등 토지와 관련된 양안.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8
운현궁 소유의 논, 밭 등 토지와 관련된 양안.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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