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에서 ‘연희’ 역 맡은 김태리. (촬영: 박혜옥 기자)ⓒ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8
영화 ‘1987’에서 ‘연희’ 역 맡은 김태리. (촬영: 박혜옥 기자)ⓒ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8

 

파격적인 데뷔작, 강한 인상 남겨

이번엔 1987년 새내기로 분해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배우 김태리를 처음 만난 건 영화 ‘아가씨(2016)’의 언론시사회 때다. 그는 시대와 신분, 성(性)의 장벽을 뛰어넘어 자신의 운명과 사랑을 개척해낸 ‘숙희’로 분해 열연했다. 영화가 개봉하자 대중은 충격에 빠졌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의 배우가 수위 높은 동성애 소재의 영화에서 막힘없이 연기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가씨’는 그의 데뷔작이다. 파격적인 김태리의 연기는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에겐 ‘충무로 신데렐라’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로부터 1년 반 만에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로 스크린에 돌아온 김태리는 87학번 대학 신입생 ‘연희’로 분해 관객을 1987년으로 데려간다.

영화 ‘1987’에서 ‘연희’ 역 맡은 김태리. (촬영: 박혜옥 기자)ⓒ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8
영화 ‘1987’에서 ‘연희’ 역 맡은 김태리. (촬영: 박혜옥 기자)ⓒ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8

지난해 12월 27일 개봉한 영화 ‘1987’은 1987년 1월, 스물두 살 대학생이 경찰 조사 도중 사망하고 사건의 진상이 은폐되자,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용기 냈던 사람들의 가슴 뛰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김태리가 연기한 ‘연희’는 허구의 인물로, 전형적인 비민주적 군사정권으로 억압됐던 1987년의 상황에서 당시를 살았던 보편적인 시민을 대변한다.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만난 김태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편집을 잘 하셨더라(웃음). 재밌고 즐겁게 봤다”며 “옆에 선배님들 너무 많이 우시더라. 감독님이 많이 우셨다. 감독님은 울보다”며 환하게 웃었다.

처음 시나리오 볼 때 넋 놓고 봐

가상인물 연희 만들어가며 연기

그는 “박찬욱 감독님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감독님께서 ‘나는 이 영화 객관적으로 못 볼 것 같다’고 하시더라”며 “그 세대를 사신 분은 직접 보고 겪어서 더 와 닿지 않았을까 싶다”고 전했다.

영화 ‘1987’에서 ‘연희’ 역 맡은 김태리. (촬영: 박혜옥 기자)ⓒ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8
영화 ‘1987’에서 ‘연희’ 역 맡은 김태리. (촬영: 박혜옥 기자)ⓒ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8

“처음 시나리오를 볼 때 넋 놓고 봤어요. 종이를 넘기는 손이 안 멈춰져 한번에 다 읽었죠. 몰입감과 속도감이 정말 좋았어요. 무엇보다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를 시나리오로 잘 쓰셨더라고요.”

가벼운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받은 뒤 읽고, 출연이 확정될 때까지 김태리는 ‘연희’ 역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처음 촬영할 땐 잘 몰랐는데 하다 보니 연희가 어려운 역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설정된 다른 배역과 달리 연희는 가공인물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캐릭터의 설정은 오로지 김태리의 몫이다. 김태리는 “연희는 보통의 사람이다. 연희의 가족사, 연희의 개인사, 연희가 바라보는 상황은 내 주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일”라며 “다른 선배님들은 실존 인물의 기사나, 사진을 보고 접근했다면 나는 평범하게 캐릭터 분석하듯이 전사부터 만들어 나갔다”고 돌아봤다.

이어 “또 역사적인 지식은 공부를 따로 했다. 솔직히 그전에는 1987년 6월 항쟁에 대해 너무 대충 알고 있었다. 공부하면서 느낀 건 우리나라가 참 대단한 나라라는 것”이라며 “정치권력이 이 정도까지 부패할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시민들이 한목소리를 내서 권력보다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대단한 나라구나 싶었다”고 덧붙였다.

영화 ‘1987’에서 ‘연희’ 역 맡은 김태리. (촬영: 박혜옥 기자)ⓒ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8
영화 ‘1987’에서 ‘연희’ 역 맡은 김태리. (촬영: 박혜옥 기자)ⓒ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8

 

“시민들이 운집해서 한목소리를 내요. 권력 없는 시민들이 더 큰 힘을 낼 수 있는 거죠. 지난해 진행된 촛불시위도 외신에서 굉장히 놀라면서 보도하고 그랬잖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 우리 국민성에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그걸 보면서 우리나라가 희망이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김태리는 “감정연기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마음이 좀 닫혀 있어서 그런 것 같다”며 “워낙 감정연기가 많아서 선배님들한테 물어봤다. 강동원 선배님은 ‘몰입이 중요하다’고 말해주셨고, 엄마 역으로 나오신 김수진 선배님은 ‘몸이 기억하는 것이고 그걸 억지로 끌어내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라고 알려주셨다”고 회상했다.

“‘1987’ 시나리오를 보면서 가장 동기부여 됐던 장면이 바로 그 엔딩 장면이었어요. 관객으로서 너무 궁금했거든요. 관객의 입장에서 봤을 때 연희가 많은 사람을 바라보고, 관객들이 연희의 뒷모습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 감정이 어떤 것일지 정말 궁금하더라고요. 여러분 험난한 과정들이 지나고 엔딩 장면이 올라갔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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