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이게 나라냐”라는 자조 섞인 말이 지난해부터 우리 주변에서 흘러나왔고 ‘나라다운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과 국민 사이에서 자주 거론돼왔다. 지난 한해 우리 국가·사회에서 발생한 일들이 많았고, 외교안보·정치·경제·사회 등 국정의 다방면에서 편안한 날이 없다보니 모두의 걱정거리였다. 과연 ‘나라다운 나라’가 어떤 모습일까? 필자가 생각해봐도 선뜻 그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예전 같았으면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그렸음직한데, 지금 사정이 그렇지가 않고, 나라가 국민안전을 지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조직이 거대하고, 통치가 국민 일상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이다 보니 천지개벽하지 않는 이상 피치자(被治者)로서의 민초들은 치자(治者)들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정치권에서 나도는 ‘나라다운 나라’의 설정이나 그 운영에 있어서도 권력자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렇다면 정부여당에서 이 중요한 국가적 과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정책으로써 얼마만큼 좋은 방향으로 풀어나갈지에 관건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라다운 나라’에 관해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초 국민께 드리는 새해인사를 통해 언급한 바 있다. 2017년은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가 1차적인 국정목표였고, 2018년은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가 바로 국민 삶을 바꾸는 일, 체감하게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또한 “문재인 정부는 올해 적폐청산과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에 더욱 매진할 것”이라 하면서 나라다운 나라의 핵심은 국민 민생과 국민 안전이라고 말했다. 또한 시장에 굳어진 양극화와 불평등을 외면하지 않고 재난재해를 비롯한 국민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요인들에 대한 대응이 제대로 작동되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으니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런 가운데 이낙연 국무총리가 국정 현안 조정회의에서 “내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뜻 깊게 기념하는 일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출발”이라고 강조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정부가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함께 접하고서 곰곰이 생각해본즉, 이것이야말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일에 대한 답이 아닐까 여겨진다. 정부가 대한민국 역사의 뿌리를 찾아내 잘 구현한 토대 위에, 국민이 헌법상 보장되는 민주주의의 혜택을 누리면서 한국인의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바로 그 일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는 우리 대한민국의 뿌리이자 법통(法統)이지만 사실 그동안 우리 정부에서는 임시정부를 등한시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법 전문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3.1운동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선언한 정도가 고작일 뿐, 일제강점기에 애국지사들이 해외에서 자주독립을 위해 임정을 수립하고 항일운동했던 역사 자료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이 없다. 임정 수립 100주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기까지 임시정부기념관 하나 없다는 것은 숱한 고초 속에서도 구국활동을 해온 애국지사들과 그 후손들에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대한민국의 뿌리를 등한시해 온 나라의 체면이 정말 말이 아니다.

임정을 생각하다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이다. 김구 선생은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중 1919년 3월 기미년 독립만세운동으로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자 중국 상해로 망명했고, 그해 4월 13일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한 구국단체인 임정 수립에 관여했다. 그 후 임정은 일본군의 눈을 피해 1936년 쩐쟝(镇江)으로, 1937년 장샤(長沙)로, 1939년에는 광저우(广州)를 거쳐 충칭(重庆)으로 이동해 지속적으로 대한민국독립운동 활동을 펼쳤다. 김구 선생은 1940년 충칭 임정에서 주석 자리에 취임해 해방될 때까지 항일운동의 대표기구의 수장으로서 막중한 역할을 수행해온 민족의 영원한 지도자였다. 백범 선생의 선각자적인 애국심과 나라다운 나라의 진면목은 그의 백범일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을 받아 가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이같이 백범 선생의 나라다운 나라에 관한 선각은 분명하다. 나라다운 나라의 기초는 높은 문화의 힘이고, 그것은 나라의 모든 부문에서 ‘제자리 찾기’에서 시작된다. 정부가 나서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건국의 뿌리부터 찾는다고 하니 권력을 통한 강제성보다는 국민의 화합과 건전한 정서에 기인된 자발적인 애국적 발로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먼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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