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6.25 당시 우리를 도와줬던 고마운 나라들의 국기를 면면히 떠올려 보자. 옥수수대 파이프를 문 맥아더 장군과 그 뒤로 펄럭이는 성조기의 모습이 무성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흘러간다.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네덜란드 프랑스 콜롬비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태국 필리핀 그리스 남아공의 국기도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훈훈한 형제애를 남겼던 터키도 잊으면 안 된다. 아직 한 나라가 빠졌다. 이제부턴 그 나라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1951년 4월 에티오피아는 자국의 황실근위대를 한국에 보냈다. 당시 에티오피아는 우리보다 잘살았지만 파병을 보낼 정도로 넉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시 통치권자였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즉시 파병을 결정했다.

이 파병이 황제의 친서방 정책에 따른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그보다는 ‘침략’을 목격하면서 900여 차례의 외침을 견디며 나라를 지켰던 에티오피아인의 피가 끓어올랐던 결과일 게다. 전문가들은 황제가 세계 평화를 위한 집단안보를 신뢰했기 때문에 파병을 결정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셀라시에 황제의 출정사에서는 집단안보가 세계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신념이 확고하게 묻어난다.

“이것은 여러분이 조국을 대표해서 지구 저편 한국 땅에서 오늘날 국제정치에서 가장 신성한 이념을 지키는 싸움을 하기 위한 출정식입니다. 그 이념은 세계 평화와 개인 자유를 보장하는 집단안보 정신이며 바로 우리 에티오피아인이 영원히 수호해야 할 원칙입니다.”

파병 이유야 어쨌든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황실근위대를 다른 대륙 전쟁에 보내는 나라가 흔하겠는가. 저자도 “에티오피아인에게 한국전쟁 참전은 의심할 여지없이 신성한 것이었다. 어떠한 나라보다도 에티오피아는 이 전쟁이 주는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며 “세계평화를 위해 에티오피아보다 더 큰 신념을 갖고 더 열렬하게 나선 나라는 없다”고 강조한다.

인류의 평화라는 기치 아래 에티오피아의 ‘강뉴(Kangnew, 황제가 직접 내린 이름으로 에티오피아어로 ‘초전박살’이라는 뜻)부대’ 1진은 1951년 5월 부산 땅을 밟게 된다. 이동 거리만 1만 4500km. 조국을 떠난 적이 없는 구릿빛 피부의 사나이들은 동양의 작은 나라를 위해 지구의 한 바퀴 반을 돌아왔다.

5진까지 총 6037명이 파병된 강뉴부대는 253번의 전투를 벌여 253번 승리하는 눈부신 활약을 한다. 123명의 전사자와, 536명의 부상자가 있었지만 출동한 전원이 무사히 귀대했으며, 전쟁 내내 포로가 한 명도 없는 진기록을 세웠다.

강뉴부대는 굉장히 훈련이 잘 돼 있는 군대였다. 정신력도 대단했다. 부대원들의 마음에는 항상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태양처럼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들은 전투에 나간 이상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책은 이러한 강뉴부대 활약상을 1진부터 5진까지 나눠 전하고 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사명감만으로 전투를 수행한 영웅들의 이야기는 6.25 60주년을 맞은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남긴다.

키몬 스코르딜스 지음 / 오늘의책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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