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슬곱슬한 ‘파마’ 해방 후엔 사치문화로 취급
곱슬곱슬한 ‘파마’ 해방 후엔 사치문화로 취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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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서울시립 부녀복지관 여성작품전시회 및 바자회. 대부분 파마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다 (출처: 서울사진아카이브)
1985년 서울시립 부녀복지관 여성작품전시회 및 바자회. 대부분 파마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다 (출처: 서울사진아카이브)

한국학중앙연구원 발표
신문서도 시간·돈 낭비 지적
한국전쟁 후 특별행위세 부과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일명 ‘아줌마 파마’라고 불리는 뽀글뽀글한 머리.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쌍문동 아줌마 3인방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도 뽀글머리다. 최대한 강력하고 촘촘하게 말아 오래도록 그 모양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인데, 할머니와 아줌마들의 ‘절약형’ 스타일로 통한다.

또 웨이브 등의 파마는 젊은 여성들에게는 미모를 아름답게 꾸미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처럼 오늘날 파마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과거에는 미풍양속을 파괴하는 사치스러운 존재로 취급 받았다.

◆조선 여성미 파괴하는 원인으로 지적

1일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인, 어떤 옷을 입고 살았나’ 자료에 따르면, 해방 직후 파마는 사치스럽다고 비판을 받았다. 1947년 한 신문에 서울 부녀들이 머리 치장값으로 한 달에 720만원쯤 소비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서울 시내 미용실 180여곳이 한 달 평균 4만원, 최고 6만원의 수입을 올린다는 것을 기준 삼은 통계였다.

기사는 머리치장에 소비되는 시간·노력·금전이 아깝다는 점을 지적했다. 조선 여성미를 파괴하는 파마가 탐탁지 않다는 의도도 기사 곳곳에 담겨 있었다. 조선적인 것과 다르며 심지어 괴상망측한 노랑머리를 모방해 조선 여성미를 파괴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가격이었다. 1949년에는 서울 시내 미용실이 2년 전보다 20여곳이나 늘어 203곳에 달했다. 1949년 5월 파마 요금이 300원에서 500원으로 인상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파마를 사치의 전형으로 낙인찍기에 이보다 더 좋은 핑계는 없었다.

한 기사에 따르면 이때 미용실에 출입하는 여자의 50%가 접대부, 30%가 여학생, 그리고 나머지 20%는 가정부인인 것으로 파악됐던 듯하다. 여학생과 가정부인에게는 경제적인 면을 고려해 자제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요금 인상이 보도된 다음 날에는 ‘전발 금지령’을 제안하면서 파마를 ‘미풍양속을 파괴하는 방탕’이라고 폄훼하는 독자투고가 올라오기도 했다.

◆특별행위세 부과… 총수입 50%가 세금

한국전쟁이 끝난 후, 파마는 사치의 전형이자 쓸데없는 치장으로 간주됐다. 전란 후 국가적으로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더욱 파마는 차별된 듯하다. 당시 정부는 파마에 특별행위세를 부과했다. 특별행위세는 주로 요리와 음식, 여관, 고급 과자와 사진 촬영 등에 적용됐다. 여기에 이용업에 속하는 파마가 포함되면서 미용사들은 총수입의 50%를 세금으로 내야 했다. 즉 파마가 400원이면 여기에 다시 200원의 특별행위세가 부과되어 고객은 총 600원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조치에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1954년 5월 10일 덕수궁에서 열린 미용업자조합연합회 총회에서는 “미용업을 사치행위 종목에서 제외해 달라”는 요구를 민의원에 제출했다. 또 파마와 미용이 현대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필수종목’이라는 주장을 폈다.

파마를 둘러싼 사회적 시선이 한결 너그러워진 것은 1960년대로 들어선 이후부터였다. 이제 신문에서는 여름이 되기 전에 파마를 해두라고 권하고 그 머리를 어떻게 손질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머릿결이 나빠지지 않는지를 이야기하며 뉴욕 헤어스타일리스트의 스타일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의 경제발전이 시작되면서, 국민들의 사고도 더 넓어지는 듯 보였다. 이제는 남자도 파마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하지만 불과 수십년 전까지는 이처럼 파마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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