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 순국일을 하루 앞둔 지난 12월 18일 일본 가나자와에서 윤의사 숭모 한일간담회를 갖고 있다. 윤주 상임고문이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3
윤봉길 의사 순국일을 하루 앞둔 지난 12월 18일 일본 가나자와에서 윤의사 숭모 한일간담회를 갖고 있다. 윤주 상임고문이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3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윤봉길 의사의 친조카인 윤주(71)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상임고문은 지난해 12월 윤 의사가 암장된 현장에 가서 제사를 올리고 빠른 시일에 후손들도 잘 알 수 있도록 순국된 장소에 작은 표지석이라도 세우고 싶다고 다짐했다.

윤주 상임고문은 지난해 12월 19일 윤봉길 의사 순국일을 맞아 일본 가나자와 암매장터에 가서 추모식을 지냈다. 앞서 18일에는 윤의사 숭모 한일간담회를 가졌고 이 자리에는 다무라 교수를 비롯해 니카타 총영사, 가나자와 시의원 등이 참석했다. 19일 순국일에는 추모식 이후 암장묘비에 가서 제사를 지냈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상해의거 후에 체포돼 5월 25일 상하이 일본군 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그해 11월 18일 일본으로 압송돼 가나자와에서 12월 19일 총살형으로 순국했다.

지난 12월 19일 윤봉길 의사 순국일을 맞아 일본 일본 가나자와 암장묘비에서 윤봉길기념사업회 주최로 추모식을 가진 뒤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3
지난 12월 19일 윤봉길 의사 순국일을 맞아 일본 일본 가나자와 암장묘비에서 윤봉길기념사업회 주최로 추모식을 가진 뒤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3

윤 의사의 상해의거는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 겸 전승축하기념식이 열린 중국 상하이 홍커우공원(현재는 루쉰공원으로 변경)에서 폭탄을 터트려 시라카와 일본군 대장과 일본인 거류민단장 가와바다가 죽고,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중장과 제9사단장 우에다 중장, 주중공사 시게미쓰 등이 중상을 입도록 한 거사였다.

당시 상해의거의 의미에 대해 윤주 상임고문은 “중국 총통 장제스는 중국 100만 대군도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며 감동을 받아 제2차 세계대전 말 전후처리문제를 사전협의하기 위해 열린 카이로회담에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고, 이로 인해 많은 식민지 국가 중 유일하게 우리 조선만이 전후 즉시 독립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곧 윤 의사 의거는 나라를 다시 찾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는 얘기다.

윤 의사는 총살 후 시영묘지관리사무소와 쓰레기 소각장 사이 좁은 통로에 표식도 없이 암매장됐고, 이는 광복 직후 유해 발굴 작업을 통해 1946년 5월 15일 국내로 봉환, 7월 6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안장됐다. 당시 윤 의사를 비롯해 이봉창, 백정기 의사도 함께 발굴 작업을 통해 효창공원에 나란히 안장됐다.

윤 의사가 암매장됐던 장소에는 1992년 암장묘비가 설립됐고, 지금까지 매헌윤봉길의사암장지보존회에 의해 관리되어 오고 있다.

윤주 상임고문은 “이번에 현장을 다녀오면서 후세에도 널리 알 수 있도록 순국장소 지점에도 조그마한 표지석을 세울 것을 다짐했다”고 말했다. 

왼쪽 사진은 1932년 5월 1일자 도쿄니찌니찌신문 호외에 보도됐던 연행 모습. 흐린 날씨와 필름 전송 과정에서 발생된 문제로 윤 의사 얼굴과 중절모자 수정처리해서 보도됨. 오른쪽 사진은 1932년 5월 1일 오사카 아사히신문 호외 2면에 보도된 사진. 흰 물체는 일본군의 군도(칼)며, 삼엄한 경계 속에 연행되고 있으며,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진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3
왼쪽 사진은 1932년 5월 1일자 도쿄니찌니찌신문 호외에 보도됐던 연행 모습. 흐린 날씨와 필름 전송 과정에서 발생된 문제로 윤 의사 얼굴과 중절모자 수정처리해서 보도됨. 오른쪽 사진은 1932년 5월 1일 오사카 아사히신문 호외 2면에 보도된 사진. 흰 물체는 일본군의 군도(칼)며, 삼엄한 경계 속에 연행되고 있으며,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진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3
1946년 3월 6일 40여명의 유해발굴대원이 일본 가나자와시에서 윤봉길 의사 유해발굴작업을 벌이고 있다. 당시 가나자와 의대생 주정균 학생이 윤봉길 의사의 유골을 수습하고 있는 모습이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3
1946년 3월 6일 40여명의 유해발굴대원이 일본 가나자와시에서 윤봉길 의사 유해발굴작업을 벌이고 있다. 당시 가나자와 의대생 주정균 학생이 윤봉길 의사의 유골을 수습하고 있는 모습이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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