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조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로봇/인지시스템연구부

남아공월드컵에서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해 잘 뛰어주고 있는 차두리 선수가 로봇이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고 있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스테미너와 변함없이 웃는 얼굴이 로봇을 연상시키고, 아버지 차범근 씨는 아들이 공을 잡으면 원격조정 하느라 정신없어 해설을 멈춰버린다는 엉뚱한 발상의 ‘차두리 로봇설’은 요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차두리는 로봇축구단에서 이적해 왔다!”라고 한다면 얼마나 황당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될까? 머지않은 미래에는 이러한 일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니, 로봇이 축구선수를 대신하지 못하는 법이라도 미리 만들어 놓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해괴한 상상을 해 본다.

로봇축구 월드컵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국제로봇축구연맹(FIRA: Federation of International Robot-soccer Association)컵과 로보컵(RoboCup)의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다. FIRA의 창설자는 한국 축구로봇의 아버지로 알려진 KAIST의 김종환 교수이고, 로보컵의 창설자는 일본 오사카 대학의 미노루 아사다 교수인데, 상호 경쟁적인 관계에서 출발을 해서인지 두 개의 로봇 월드컵 간에는 한·일간 교류가 전혀 없는 것이 재미있는 현상이다.

첫 번째 로봇축구 월드컵은 1996년 11월 ‘1996 마이크로 로봇 월드컵 축구대회(MIROSOT ’96)’이란 명칭으로 한국 KAIST에서 국내 3000여 명과 국외 2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고, 미국 뉴턴연구실  팀이 우승을 하였다. 이어서 1997년에는 로보컵 1회 대회가 일본 나고야에서 열렸고, 미국 남가주대학 팀과 일본 오사카대학 팀이 공동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로봇축구 월드컵은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지능을 가진 로봇에 대한 기술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된다. 처음에는 바퀴가 달린 소형 로봇에서 출발하였지만, 이제는 두 발로 걷는 휴머노이드 로봇 경기가 양쪽 월드컵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 있을 정도로 로봇 하드웨어의 진전을 가져왔다.

축구로봇에서는 기계 작동기술 보다는, 시각을 통해 상대 팀과 골대 및 공의 위치를 파악하고 팀 전술에 따라 로봇팀을 작동시키는 인지와 지능기술이 더욱 중요하다. 컴퓨터 시각을 통한 인지기술은 모든 지능형 로봇 분야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기술로 이 기술의 확보 여부가 로봇기술 강국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라 말할 수 있다.

이에 수반되는 로봇팀 단위의 군집지능 기술도 다양한 분야의 로봇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인 기술로 평가된다. 재해현장에서 사람을 구하거나 오염된 환경지역을 탐지하는 데에는 로봇이 팀 단위로 투입되어 서로 협조하며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더 나아가서 군인을 대신하는 국방 로봇의 경우에는 군집로봇의 협조동작이 인명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기술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로봇축구 월드컵을 통해 가장 영향력을 미쳐 왔던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로봇기술은 상대적으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앞으로 상호 협력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여 축구로봇 관련 기술을 발전시켜 나간다면, 그 기술을 바탕으로 머지않아 더 많은 로봇들이 사람들에게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로봇들이 사람에 버금갈 수준의 축구시합을 하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축구선수들은 로봇에 지지 않으려고 더욱 열심히 축구기술을 연마하게 될 것이며, 혹시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로봇과 교체되는 인간 선수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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