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대표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바로 이런 것을 일컫는 게 아닐까 싶다. 한국이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처음으로 ‘원정경기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올린 뒤 갑자기 ‘병역 면제’라는 뜨거운 감자가 이슈로 떠올랐다.

말이 그렇지 우리 대표팀이 이번에 이룩한 본선 16강 진출은 생각만 해도 꿈만 같은 사건이다. 허정무 감독을 비롯한 축구협회 관계자들이 남아공으로 떠나면서 “기필코 16강에 오르겠다”고 기염을 토했지만 이는 열화와 같은 국민적 염원에 대한 ‘수사적 답변’이었지 실제로 예선통과를 굳게 믿은 사람은 축구계 내부에 그리 많지 않았다. 아시아 축구와 세계 축구와의 높은 벽은 이미 여러 번 검증된 터여서 조별 예선에서 1승 정도를 올리면 체면치레를 할 것이라고 내다봤었다. 그런데 가상하게도 대표팀이 대형사고를 쳐버린 셈인데 이 와중에 병역특혜라는 핫이슈가 제기되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것이다.

발단은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이 한국-나이지리아 경기가 끝난 직후 “어려운 원정 16강을 이뤄낸 만큼 병역혜택을 줄 만한 가치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언급한 데서 비롯됐다. 관계자들이 반색한 것은 당연한 일.
허정무 감독은 “사상 첫 원정 16강에 진출하는데 해외파 선수들의 경기력이 큰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라며 “병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선수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미 한일월드컵 덕에 병역면제를 받은 박지성은 “원정 16강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2002년 병역혜택을 받아 유럽에서 뛰었던 선수들이 많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며 “나 역시 이 덕에 유럽 진출 기회를 잡아 많은 경험들을 후배들에게 나눠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 대표팀에는 박지성을 비롯, 이영표, 김남일, 차두리, 안정환 등 5명이 병역 혜택을 받아 유럽 무대에서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이미 인터넷 상에서 네티즌들끼리 뜨거운 설전을 벌이는 내용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국민개병제식 병역의무가 시행되고 있는 분단 한국 실정에서 병역혜택 여부는 개헌문제보다도 더 민감한 사안이다. 가장 큰 논란은 타 종목과의 형평성 문제다. 정부는 4강까지 올랐던 한일월드컵 때 선전한 선수들에 대한 포상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등에 업고 병역특례를 줬다. 그런데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한 야구대표팀 선수들은 4강까지 진출했으나 병역면제를 받지 못했다. 병역법상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병역법에는 올림픽 대회에서 3위 이상으로 입상한 사람(단체경기종목의 경우에는 실제로 출전한 선수만 해당)과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만 공익근무 전환배치 등 병역혜택을 줄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이 법에 따르면 WBC는 물론 월드컵은 아예 대상자체가 되지 않는다. 또한 이번에 만약 축구팀에 혜택을 준다면 비인기종목 선수들의 경우도 월드컵같은 세계대회 입상을 이유로 면제를 요구하는 난감한 상황이 대두될 것이다.

더구나 이번 축구대표선수들은 대개 거액 연봉을 받고 있는 점도 국민적 정서를 자극할 만한 사안이다. 게다가 이번 16강 진출로 선수들은 일단 최대 1억 7천만원의 포상금도 받을 예정이다. 네티즌들의 반응도 약 8대 2로 혜택에 부정적이고 병무당국도 난색을 표명했다. 그러면 타 종목과의 형평성도 감안하고 병역면제를 통해 국제경험을 쌓도록 해 한국축구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묘안은 없을까?

나는 이 대안으로 병역법상에 예외조항을 두어 이번 월드컵과 같은 이례적 사안이 발생할 경우 국회에서 특별결의를 통해 특별혜택을 주는 방안을 제안한다. 다만 이 경우 혜택을 받는 선수들은 병역복무기간인 2년 동안 연봉 등 수입의 일정부분을 국가에 기부하는 방안을 병행해 일반인과의 형평성도 맞출 필요가 있다.

이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닐 성 싶다. 국회 국방위 등에 별도 소위를 설치해 국민적 합의를 보면 당장 이번 월드컵 대표팀부터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박주영 선수의 경우 군이 면제돼 모나코에서 계속 뛰면서 기량을 연마하되 그의 연봉 일부는 국가에 귀속시킴으로써 쥐꼬리만한 사병수당을 받고 군복무를 해야 하는 대다수 젊은이들의 반발을 무마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기금은 해당 분야의 경기력 향상을 위한 예산 등으로 사용하면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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