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출처: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권 진입 달성
“경제기적을 이룩한 아시아 대표 국가”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당시 15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산업시설의 40~50%는 멸실됐다. 1950년 국내총생산(GDP)은 1940년 대비 27%가 감소하는 등 경제 기반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한국은 그러나 분단국가로 출발해 전쟁의 상처까지 경험하는 등 여러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이를 발전의 계기로 삼았다. 그리고 6.25전쟁 이후 60년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경제시스템 정부주도형→수출주도형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대한민국경제 60년 대장정’ 보고서에 따르면 1960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79달러였다.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하루를 2000원 남짓으로 생활해야 했던 절대빈곤 상태였다.

정부는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경제개발을 추진했다. 제1차 5개년 계획(1962~1966)을 기점으로 정부주도의 대외 지향적 공업화 발전이라는 한국경제시스템의 큰 줄기를 형성했으며 수출확대와 경제발전에 주력했다.

이후 1981년까지 총 4차례에 걸쳐 시행된 경제개발 계획은 대내 지향적 경제시스템에서 수출주도형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외환위기 경제성장 밑거름 효과

1970년대 초반 정부는 철강·기계·조선 등 중화학공업 부문을 중점으로 육성하는 정책방향을 설정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풍부한 노동력과 정부의 전폭적인 금융지원을 바탕으로 일본 등 선진국으로부터 생산시설과 기술을 도입했고, 중화학공업 비중은 1970년 39.2%에서 1980년 53.6%로 급증했다.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은 또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 21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들을 탄생시켰고 철강·석유화학·자동차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국제 경쟁력을 보유하게 됐다.

80년대 초반 반도체 분야로 시작한 IT산업은 90년대 들어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부상했으며 98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 전 분야에 걸쳐 개방이 추진됐고 시장 개방 및 자본자유화가 선진국 수준으로 단행됐다.

개방과정에서의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개방체제로의 편입은 경쟁력 향상에 기여,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한국경제, 차세대 유망산업 육성

세계은행 등은 지난 60년간 한국경제가 이룬 성과에 대해 “고도성장을 이룩한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경제기적’을 이룩한 대표적 사례”로 평가했다.

원조 받던 나라에서 반세기 만에 원조하는 나라가 된 건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학습과 모방 등 단순한 추격 전략으로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전영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연구개발(R&D)투자 확대와 금융부문의 효율성 제고를 통해 기업의 기술경쟁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시장기회를 창출해 차세대 유망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며 “금융·바이오·에너지 등 신성장 동력산업 육성으로 산업구조를 다각화해 혁신 주도형 경제로의 이행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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