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황제, 최초로 검정고무신 착용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신발은 인간이 개발한 오래된 문명 중 하나다. 인간은 두 발로 서게 되면서 체중을 지탱하는 발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서 시작된 신발은 자연과 문화적 환경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그만큼 우리의 삶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신발 기원은 신석기시대로, 1995년에 부여에서 출토된 짚신이 가장 오래됐다. 이 짚신은 엄밀히 말해 짚이 아니라 물가에 나는 부들로 제작됐으며, 길이 30㎝ 너비 10.7㎝에 달해 주인공의 발 크기가 화젯거리가 된 바 있다.

삼국시대에 들어와 지배계급은 목이 긴 가죽신을, 중간계급이나 피지배계급은 짚신이나 목이 없는 가죽신을 신었다. 이는 당시 사회가 신분·계급사회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무신은 개화기에 들어왔다. 고무신 모양은 폭이 넓고 굽이 낮은 것이 주를 이뤘고, 갖신과 당혜의 본을 떠서 제작됐다. 검정고무신을 최초로 신은 사람은 조선 마지막 황제인 순종황제였다.

개화기 당시 짚신 미투리 갖신 나막신을 신었던 사람들은 방수가 잘되고 실용적인 고무신에 반했다.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고무신은 일제강점기 때 생산이 통제됐으나 1945년부터 한국전쟁까지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발의 위생뿐만 아니라 기능과 패션을 고려해 만든 운동화 및 구두의 대중화로 고무신 수요는 점점 줄어들었다.

1970년대 이후 도시 전체가 아스팔트로 포장되면서 구두가 잘 팔렸다. 당시 사람들이 구두굽과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를 멋스럽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생활이 풍요로워진 현대에는 운동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운동화 수요가 크게 늘었다. 구두의 불편함을 개선하고 편리한 기능이 추가된 패션 운동화 역시 눈길을 끌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플랫슈즈, 부츠, 장화 등 다양한 신발이 있다.

◆ 갖신과 당혜
가죽으로 만들어진 신발로 남자 가죽신을 갖신, 여자 가죽신을 당혜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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