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한국에서 운동선수에게 영구제명은 ‘사회적 죽음’이나 다름없다. 운동 하나만 바라보고 모든 시간을 바친 선수들에게 영구제명은 그 분야에서 영원히 추방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밥줄이 아예 끊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주홍글씨’로 낙인찍혀 개인적으로 좋아서 하는 운동마저도 할 수 없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스포츠 승부조작, 약물 복용 등으로 영구제명 처분을 받은 운동선수 출신들은 법적인 처벌을 받은 이후에도 평생 해온 운동을 할 수 있는 인간적 권리마저도 포기하고 사회의 ‘낭인(浪人)’이 돼 버린 것이다.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난 직후인 이번 주 초, 서울에서 은행원으로 오래 근무했다가 정년퇴직한 뒤 올 여름 강릉으로 이주한 친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건강관리를 위해 조기 축구회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는 그는 “대한축구협회에 민원을 넣고 싶은데, 아는 사람이 없어 너에게 전화했다”며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내용은 이랬다. 친구는 조기 축구회에서 운동을 하면서 지난 2011년 프로축구 K리그 승부조작 사건 당시 승부조작 브로커 역할을 한 것이 발각되어 K리그에서 영구 퇴출된 전재운(36)이라는 이를 알게 됐다. 강릉상고와 울산대를 거친 전재운은 한때 청소년 대표선수와 U-23 대표선수로도 활약했던 ‘잘 나가는’ 선수였다. 울산 현대, 수원 삼성, 전북 현대, 제주 유나이티드 등에서 뛰었던 그는 K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돼 영구제명 처분을 받고 2년 6개월의 징역형도 선고 받았다. 

지난 수년간 그는 카센터 근무 등 여러 잡일을 전전하면서 근근히 살면서도 좋아하는 축구를 하고 싶은 꿈을 잃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는 조기 축구회에서 회원들과 함께 축구를 하며 건강을 증진하고 취미활동을 하고 싶지만 대한축구협회의 상벌규칙에 “영구제명된 이는 영구히 축구 활동을 금지한다”는 조항으로 인해 원천적으로 조기 축구조차 할 수 없는 상태이다.

친구는 “법적으로 처벌을 받았고, K리그 영구제명 처분을 받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를 개인적으로 아예 하지도 못하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며 “영구제명은 축구에서 선수나 지도자 등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 조기 축구회에서 운동을 하는 것마저 금지시킨 것까지는 좀 지나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축구, 야구, 배구, 농구 등 프로스포츠에서 승부조작, 불법 스포츠 토토 등에 간여한 혐의로 프로연맹 등으로부터 많은 지도자와 선수들이 영구제명 처분을 받았다. 영구제명을 받은 이들은 관련 직무에 영구히 종사할 수 없도록 프로연맹 등은 강력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엘리트 체육을 넘어서 생활체육에까지 영구제명 범위를 적용해왔던 것이 지금까지의 관행이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영구제명이 ‘인격 박탈권’이 아닌 만큼 자신의 기호와 취미활동까지 제한하는 것은 개인에게 부여된 헌법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지적들이 제기됐다. 그동안 일부의 경우 개인의 자숙과 사회적 기여도에 따라 영구제명을 해제하거나 완화하는 사례도 있었다. 울산과 부산구단의 이중계약건으로 인해 한국 프로축구 최초로 영구제명된 사례였던 김종부는 제3구단인 포항에 입단하는 조건으로 영구제명이 해제되기도 했으며, 야구선수 강혁은 이중계약으로 한국야구위원회에서 영구제명됐다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이후 복권되기도 했다.

전재운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대한축구협회에 금명간 조기 축구회에서 개인적으로 운동을 하고 싶다는 의향을 담은 탄원서를 제출할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원하는 운동을 제도적으로 막는 것은 지나친 면이 있지 않나, 프로연맹이나 스포츠단체들은 이번 기회에 한번 재고를 해볼 만하다. 영구제명은 두 번 다시 그 분야에서 부당한 행위를 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지, 그 사람의 사적인 생활까지도 제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죄나 잘못을 저지르고 사법처리를 받았으면서도 평생 꼬리처럼 영구제명의 굴레가 따라다니는 우리 스포츠의 현실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1850년대 미국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의 작품인 ‘주홍글씨’ 시대도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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