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어느덧 한 해가 마감되는 12월 끝자락이다. 이번 주로 2017년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허전하면서도 답답한 마음이 든다. 이런 싱숭생숭한 분위기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마다 같은 아쉬움을 토로하곤 한다. 지난해 말부터 올 한 해 내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혼란의 와중 속에서도 시간은 유수와 같아 얼떨결에 연말을 맞았으니 늘 이때쯤 회자되던,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올해 달력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12월 20일자 밑의 ‘19대 대통령 선거’ 문구, 그 내용이 현실과 맞지 않는 임시공휴일 빨간색 표시가 실상을 잘 말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장미꽃 대선을 치르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 새 정부가 출범하던 봄날, 그 때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기뻐하며 기대를 가졌다. 그러면서 다시는 특정개인이나 세력에 의해 국정이 농단되지 않는 나라다운 나라가 되기를 바라고 바랐다. 대통령이 현직에서 탄핵되고, 파면되는 정치적 우여곡절을 겪었으면 앞으로 정부와 국회가 민심을 제대로 읽어 잘해나가겠지, 정치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만큼 정치인들이 정신 차리겠지, 이러한 바람을 가졌지만 1년 가까이 지켜본 결과는 맹탕이었고, 정치인들의 국민화합과 사회안정을 위한 노력은 뒷전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대두되고 있는 문제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마치 틈새 벌어진 문풍지 구멍에서 찬바람이 들이닥치는 꼴인바, 그 문제들은 안보, 정치, 경제, 사회갈등, 국민안전, 양극화 등 여러 분야에서 고루 나타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정치권 행태가 단연 압권이다. 갖가지 사회 난맥상들이 치유되고 해결되려면 정치가 국민상식선에 맞춰 잘 풀려 가야 하건만 산적한 현안에도 여야는 뒷짐 지기 일쑤고, 야당은 계파이익을 쫓아 당내 쟁탈전에 혈안이 돼있다.

정치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다. 그렇다면 국민으로부터 국가권력을 위임받은 공직자들이 각자 맡은바 직분에서 국익과 국민을 위해 정당한 권한을 행사하면서 사회질서를 바로잡고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케 하는 게 그 본분이 아닌가. 그래서 정치인들이 국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정의롭게 나라를 다스려 국민걱정이 없도록 해야 함에도 이때까지 현실은 그렇지가 못했다. 그 탓에 한국정치가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는 가운데 정치인들은 가장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국민 불신을 받는 신세로 전락되고 만 것이다. 

그런 사정이니 국민 살림살이가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나라 미래를 열어갈 새싹인 아기의 울음소리는 갈수록 뜸해지고,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잘 되지 않는 판이니 청년실업이 넘쳐난다. 중년들은 툭하면 터져 나오는 직장 구조조정에 불안한데다가 자영업자도 마찬가지다. 또 한평생 자식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졌던 노인들은 노후보장책을 마련하지 못해 고심이 크다. 기초연금 등 복지제도가 과거보다 좋아지긴 했으나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이 OECD 국가에서 여전히 1위로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니 노인들이 살아갈 노후생활은 어둡기만 하다.

또 한가지 불안감을 감추고 못하고 있으니 바로 국민안전 문제다. 세월호 참사로 그동안 국민들이 아픔을 겪었으면 다시는 유사한 참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정부당국이 철저한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하지만 얼마 전 영흥도 낚싯배 전복사고에서 나타났듯 구조의 골든타임이니 하는 당국의 대책은 헛구호임이 증명됐다. 또 21일 발생한 제천 화재 참사는 소방당국의 구조 태세 등 사고 수습체계가 얼마나 허술한가를 잘 보여주었다. 소방사다리차를 제때 작동할 수 없어 민간인 사다리차에서 3명의 인명을 구조했으니 주객이 전도됐다. 화재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세월호 이후 달라진 게 뭐냐?”는 질타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정말 안타깝다. 국민이 편안히 사는 사회,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게 이다지도 어렵단 말인가.      

현실이 어려울수록 정부와 정치권은 정도(正道)를 지키고 국민은 화합·결속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정치권이 선동한 보수와 진보 양대 이념층으로 갈라져 국민통합의 간극은 더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보수든 진보든 간에 그 이념의 계승 발전은 결국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고 국민을 편하게 할 목적이어야 함이 아닌가. 이제는 정치인들이 정신 차리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선진정치를 이끌어야 할 적기다. 정치가 목적하는바 그 본연의 사명대로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믿음을 주고 화합의 견인차 역할을 할 때에 희망 한국의 불씨가 되살아나는 것이다.   

마침 오늘이 성탄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탄절은 가난한 사람과 아기예수처럼 아무에게도 환영 못 받는 사람들에게 더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이 말은 지구촌에서 강자가 약자를 위해 더 많이 관심 갖고 사랑을 베풀라는 말로 새겨진다. 회고해보면 우리 사회가 탈 많고 말썽 많은 것도 사회적 강자들의 권력욕에서 기인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사회 여러 면에서 충격파가 컸던 2017년 뒤숭숭한 세밑에서 심란한 마음으로 송구영신하면서, 다가오는 새해에는 나라가 편안해 국민이 자주 웃음 짓는 그런 날이 많았음하고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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