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고 일부에서 아우성이 나온다. 값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을 팔려고 내놓아도 팔리지 않는다고 비명이다.

이런 현상은 인구와 주택 밀집 지역인 수도권에서 점차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 ‘부동산 불패(不敗)’ 지역이라던 서울 강남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가격 상승을 선도해왔기에 강남에서 그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불패의 신화’도 ‘대세’의 흐름에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집 살 사람이 없어서 집값이 떨어지고 거래가 한산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아직도 내 집을 갖고 싶어 하는 원매자(願買者)는 많고 잠재 수요는 넘친다.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올라가기만 하던 집값이 미증유(未曾有)의 하락세로 돌아섰는가. 미래에도 계속 내려가기만 할 것처럼 보일까. 이에는 적어도 몇 가지 상식적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아파트 값은 집을 사고자 하는 가장 두텁고 가장 평균적인 잠재 수요 집단의 매입능력을 크게 벗어나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너무 비싸다. 만약 예전처럼 은행 융자나 사채를 끌어다가 무리하게 집을 사더라도 금융비용을 보전하고도 향유할 높은 매매차익이 확실하게 눈에 보인다면 이들이 집을 안 살 이유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부동산 거품을 용인하는 시대가 아니다. 또 경제의 안정적 발전을 저해하고 성장 동력을 앗아가는 그것을 용인해서도 안 된다.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지금 정권은 물론이고 앞으로 어느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부동산 거품을 용인하는 정책을 펴기는 거센 경제 사회적 저항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히려 사회적인 위화감을 달래기 위해 분양가를 낮추어 매수 능력이 취약한 수요층에 다가가는 시책을 펼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 보급이 시작된 저가의 보금자리 주택과 임대주택의 확대 보급과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영리한 수요층은 분수에 맞는 주택을 선택할 기회가 확대되기를 기대하면서 집값이 자신의 매수 능력 범위 안으로 더 떨어지는 적정 저가 매수 시점을 참고 기다리는 것이 분명하다. 지금의 집값 하락세가 풍부한 물량 공급이 집중돼 일어난 수요 공급의 일시적 불균형 탓도 있을 것이지만 반드시 그것만은 아닌 것이다. 이렇게 얼른 매수에 나서지 않는 수요층의 영리한 판단이 주택 매매의 기저에 깔려있음을 눈여겨본다면 대세적(大勢的)인 집값 동향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소유’에 집착했던 사람들의 주거공간에 대한 의식이 많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제는 사람들이 내 집 마련에 최우선 목표를 두고 허리띠를 졸라 매려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따라 잡을 수 없는 자신의 매수 능력 범위 밖으로 멀리 멀리 달아나는 고가(高價)의 주택 매입에 드는 목돈 마련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짧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내 집 마련을 위해 허덕이느니 차라리 포기하고 즐기고나 살자는 생각이다.

셋집에 살더라도 자동차를 먼저 사고, 먹을 것 먹고 입을 것 입고, 취미와 여가를 즐기며, 여러 가지 생활편의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 지출에 인색하지 않다. 이것은 일종의 ‘못 오를 나무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식의 자포자기(自暴自棄)이며 현실이 강요하는 주거공간에 대한 의식의 변화다. 현실적으로 이루어내기 어려운 내 집의 ‘소유’보다는 내 집이든 남의 집이든 삶의 공간으로 ‘이용’하면 족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의식 때문에 앞으로는 과거와 같이 오르기만 하는 불패의 주택 시장만을 예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이 절대 불변의 것은 아닐 것 같다. 주택 가격이 떨어져 용이하게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능력 범위 안으로 들어온다면 집 사는 것을 부러 기피할 사람이 그리 많을 것 같지 않다. 그 시점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그 때가 되어 사람들이 내 집을 갖자고 덤벼들면 집값은 반등하고 시장은 다시 요동을 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지금은 주택의 절대 공급량이 모자라던 시대와 달라서 지어만 놓으면 건설사들이 떼돈을 벌거나 사 놓기만 하면 구입자들이 횡재하는 시대가 아니다. 고수익을 보장하는 유일무이한 재(財)테크 수단도 아니다.
따라서 분수에 넘치는 무리한 내 집 마련은 행복이 아니라 큰 고통이 되기 쉽다. 이제는 집이 투기의 대상이나 자산 운용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대로 구입함으로써 실수요자들에게 행복을 일구어내는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주거 공간으로 활용돼야 한다. 그것이 경제적 사회적 요구일 것이며 국가 시책의 지향점일 것이다. 주택을 비롯한 부동산 가격의 폭등이 경제의 교란 요인이 되거나 빈부의 고착화 내지 계층 간 위화감을 불러 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집값이 떨어지고 안 팔린다고 나오는 아우성과 비명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주택 가격의 하향 정상화 과정에서 나오는 일시적인 진통일까. 집값이 더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 대세가 맞는 것인가. 이러다 너무 떨어져 또 다른 경제 교란 요인이 되는 것은 아닌가. 이것저것 차분하게 살피고 개인이나 국가가 또 그렇게 차분하게 대응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폭등도 안 되지만 폭락도 마찬가지여서 시장의 안정적 관리가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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