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여자’로 데뷔한 가수 박화준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13년 전 외환위기 때문에 사업을 접고 인적이 드문 강원도 산골 마을에 들어섰단다. 사람들을 멀리하고 자연을 벗 삼던 그는 예정 없던 손님이 찾아오면서 노래로 세상과 다시 소통하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끼가 많아 하고 싶은 일이 다양했다는 박화준(40, 본명 박홍렬)은 타이틀곡 ‘멋진 여자’로 데뷔했다. 구성진 목소리로 노래하는 그에게 가수란 직업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매개체다.

◆개복숭아가 맺어준 인연

가수가 되려고 상경하기 전까지 박화준은 강원도 양구군 산 속에 자리한 흙집에서 살았다. 만나는 사람은 가끔 들르는 등산객이 전부였다.

서울에서 승승장구하던 외식사업이 외환위기 여파로 내려앉으면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고, 사람을 믿기가 힘들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사업이 잘되던 때 사놨던 강원도 땅이 생각났다. 그는 손수 길을 내고 흙집을 지어 자연과 함께 머물렀던 것.

하루는 그의 집에 들른 등산객이 그의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 쉼터에 잠깐 머무른 등산객은 알고 보니 성인가요 작곡가 김영락 선생이었다. 김 선생은 “그때 개복숭아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며 “산 속에서 개복숭아를 따다 다다른 곳이 바로 박화준, 이 친구 집이었다. 그 집에서 잠시 쉬어갈 겸 해서 둘이 이런 저런 세상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통했다”고 허허 웃었다. 김 선생은 박화준의 재능을 알아보고 가수가 되기를 권유했다. 그러나 당시 박화준의 대답은 한결같이 “생각 없다”였다.

수년이 지난 후 박화준은 ‘노래로 희망을 찾자’라는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희망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 더 나아가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단다. 그래서 그는 김영락 작곡가가 있는 연습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사람들과 부딪혀가며 하루하루 노래연습을 하다 보니 약 3년이 흘렀다.

◆찰떡궁합 선생과 제자

김 선생의 말에 따르면 박화준은 노래연습을 하기 전 ‘낮아지는 법’부터 배웠다. 김 선생은 “나나 이 친구나 둘 다 성격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부딪힐 것 같았다. 그래서 둘 다 ‘자신 죽이기’부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가수가 노래를 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 김 선생으로부터 박화준이 배운 것은 ‘인성’이었다.

김 선생은 “가수가 노래를 잘해야 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됨됨이”라며 “예의범절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은 세상 어디에서도 성공에 다다르지 못하더라”고 말했다.
연습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박화준은 연습과정이 힘들어 중도하차하고 싶은 생각이들 정도였단다. 김 선생은 이러한 박화준을 다독이며 이끌었다. 박화준은 “연습과정이 힘들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피와 살이 되는 값진 경험이었다”며 “선생님은 70~80년대식으로 엄하게 가르쳤는데 난 이러한 가르침이 좋다. 선생님의 애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노래로 남을 위해 살겠다”


박화준은 사실 연예계와 인연이 깊다. 20여 년 전에 이미 배우로서 화려한 연예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는 연기뿐만 아니라 그림이면 그림, 음악이면 음악 모든 예술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예술적 감각은 집안 내력이었습니다. 형님도 미술을 꽤 잘하셨어요. 저도 연기생활을 했던 게 인기가 아닌 예술을 위해 시작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이 이웃에게 흥을 돋우거나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랐다. 다시 연기자가 아닌 새로운 가수로 연예계에 돌아온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연기와 노래는 제 삶을 표현할 수 있다는 데 공통점이 있죠. 하지만 연기는 노래보다 의무감에서 해야 한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일단 주인공과 드라마 세트 위주로 돌아가잖아요. 반면 가수는 3~4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하고 싶은 말을 함축해 무대 위에서 발산할 수 있어요.”

박화준은 “사연을 부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행복”이라며 가수의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자신의재능을 무대에서만 보여주지 않는다. 어르신들이 자신의 노래에 맞춰 흥겹게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이 보기 좋아 양로원을 주기적으로 찾아 공연한다.

주최 측에서 돈이 없다고 하면 그는 사비를 털어서라도 꼭 찾는다.

“가수가 되면서 남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다는 게 참 좋았습니다. 돈을 생각해서 가수를 택했다면 이런 생활을 견디지 못했겠죠. 단순하게 ‘나와 주위 사람이 즐길 수 있으니까, 기분이 좋으니까’라는 생각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의 고향은 전라남도 여수다. 전라도 출신 어머니 손맛을 그대로 느끼고 싶어 음식을 직접 해 먹는다는 박화준. 그래서 된장도 손수 담근다. 이미 그의 된장을 맛본 유현상(그룹 ‘백두산’의 보컬) 등 많은 사람들이 다시 박화준표 된장을 찾는단다.

좋은 된장이 나오기 위해선 천일염과 좋은 물·공기, 담그는 사람의 정성이 필수라는 그는 가수 역시 훈련 외에도 풍부한 경험이 있어야 좋은 노래가 나온다고 담담히 말했다. 한 번에 뜰 수 있는 쉬운 길을 마다하고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라가는 길을 택한 그는 자신을 ‘독립군’이라 표현했다. 그는 “늘 자신과 싸우고 있기 때문에 독립군이라 생각한다”며 “장을 정성스레 만들듯이 내 노래를 자신 있게 들려주기 위해 늘 뛰고 있다”고 덧붙였다.

▲ 김영락 작곡가(왼쪽)와 함께한 박화준

이런 제자가 대견했는지 김영락 작곡가가 박화준을 위해 맞춤곡을 선사했다. 사업과 결혼에 실패한 그에게 멋진 여자를 만나라는 선생의 마음을 그대로 곡에 담았다. 이러한 선생의 마음을 아는지 박화준은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힘이 들 때나 잘될 때나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마 김 선생님도 제게 그런 여자를 만나라는 게 아닐까 싶어요, 하하하.”

터뷰 내내 열정적으로 답한 박화준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는 당분간 ‘멋진 여자’로무대에 설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2012년에 세계박람회가 제 고향 여수에서 열린다. 고향을 알리고자 이번 앨범에 ‘오동도 사랑’이라는 애향가도 녹음했다”고 말했다.

노래로 남을 위해 살겠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 순수한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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