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22
김규진의 총석정절경도 (출처: 문화재청) ⓒ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22

빼어난 경치에 문인·화가 사랑받아
금강산의 멋과 혼 그림 속에 ‘생생’
1900년대 초에는 관광명소로 꼽혀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그리운 그 이름 ‘금강산(金剛山)’. 1만 2천봉우리를 자랑하는 이 산은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 가을에는 풍악산, 겨울에는 개골산으로 불린다. 본래 강원도 동해안 지방에는 명승지가 많기로 유명하지만 금강산은 유난히 빼어난 경치를 자랑해 예로부터 문인들이 시문으로 많이 지었다.

시인 정철(鄭澈)도 가사인 ‘관동별곡’에서 금강산 일대의 산수미와 관동팔경의 경치를 노래했다. 내로라하는 실력을 자랑하는 화가들도 이곳을 찾아 절경을 한 폭의 그림 속에 담아냈다.

최근에는 옛 선조들이 화폭에 담은 금강산이 ‘바람을 그리다 : 신윤복∙정선’ 전시와 ‘창덕궁 희정당 벽화’ 전시를 통해 공개되면서 대중의 품으로 다가오고 있다. 금강산을 만날 때가 멀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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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의 '관동명승첩-총석정' (제공: 간송미술문화재단) ⓒ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22

◆금강산을 사랑한 겸재 정선

금강산은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의 정수로 꼽힌다. 그는 금강산을 가장 많이 그린 작가로, 다양한 필치로 금강산을 화폭에 담아냈다. 시대별로 같은 장소를 몇 번이고 다시 그려 수준 높은 경지에 오른 진경산수 화풍을 보여줬다.

서쪽의 내금강에서부터 동쪽의 외금강, 그리고 드넓은 동해바다에 면한 해금강은 그의 작품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듯하다.

탁현규 간송미술문화재단 연구원은 “겸재 정선이 과연 정선인 이유는 평생 금강산을 그렸기 때문”이라며 “그는 36세, 63세, 72세, 76세에 금강산을 그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이 좋아진다. 이는 겸재가 평생 금강산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라고 설명했다.

특히 겸재 정선의 작품 ‘총석정’은 화가가 실제 존재하는 풍경을 어떻게 예술적 산수화로 승화시켰는 지를 이야기하면서 예술 세계가 성숙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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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의 금강내산 (제공: 간송미술문화재단) ⓒ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22

이곳은 소위 관동팔경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경치로 소문이 나 있다. 바다로 밀고 들어간 듯 한 총석봉 위에 세워진 정자 주변으로는 각기둥 형태의 돌이 합쳐져 보이는 사선봉의 네 봉우리가 물 가운데 떠 있어 신비롭고도 기묘한 광경을 연출한다. 정선은 이 신묘한 광경을 화폭에 담아내기 위해 주변의 풍경을 과감해 생략하고 사선봉과 총석봉만을 그려내면서 동시에 넘실대는 동해바다를 화면 전체에 채우는 구성을 시도했다.

말년에 접어든 정선은 다시 한 번 총석정을 그려내며 수준 높은 경지에 오른 진경산수 화풍을 보여 준다. 화면 중앙에 힘찬 필선으로 묘사된 사선봉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그 밑으로는 육각의 바위들이 장작더미처럼 널린 채로 동해의 푸른 파도에 부딪히고 있다. 이는 전작인 ‘관동명승첩’의 총석정과 달리 사선봉과 총석정이 동해바다를 제압하며 화면 전체에 겹쳐 풍경이 주는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다.

또 정선은 ‘불정대’를 통해 빈틈없는 진경산수화의 경지를 보여줬다. 절벽 아래에는 안개로 허공에 잠겨 있는 듯 한 절 한 채를 그려 드넓은 동해바다가 이어질 듯 한 느낌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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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진의 금강산만물초승경도 ⓒ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22

◆희정당 벽화 그린 대한제국 화가 해강 김규진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서예가, 화가인 해강 김규진도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담았다. 김규진은 ‘총석정절경도’를 통해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이 그림은 1920년 재건된 창덕궁 희정당 접견실의 동쪽 벽화로 그려졌다.

특히 큰 화면에 진하고 강한 채색을 사용해 금강산의 절경을 웅장하게 표현한 것은 기존의 금강산 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 또 다른 특징이기도 하다. 이 그림은 총석정의 장대한 경치를 배를 타고 바다 쪽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그려냈다. 큰 화면에 수평 구도로 경치를 펼쳐내 장대함을 연출했다. 특히 총석정을 올려다보는 듯한 현장감을 자아내고 있다.

‘금강산만물초승경도’도 공개됐다. 만물초는 외금강을 대표하는 절경이다. 세상 만물의 모든 형상을 담았다는 데서 그 명칭이 유래할 만큼 각양의 화강암 봉우리가 모인 기암괴석군이다. 파노라마처럼 넓게 펼쳐진 화면에는 만물초의 광활한 풍경이 부감하듯 이어진다. 그러면서 웅장한 풍경을 연출한다. 이 두 작품은 1920년대 그려진 마지막 궁중장식화다.

이 시기에 김규진이 서화활동을 활발하게 한 것은 이 시기 금강산이 관광지로 개발됐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문인과 사대부 등 제한된 계층만 금강산을 유람했다. 하지만 1914년 경원선이 개통되면서 대중들이 금강산을 찾게 됐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금강산의 관광명소를 적극 개발했고, 교통과 숙박 등 기반시설을 정비해 관광객을 유치했다.

관광엽서와 여행안내서에도 금강산 각 명소의 아름다운 사진이 실렸다. 김규진이 자신의 바위 글씨를 홍보하고 금강산 스케치, 여행기 등을 연재한 것도 이 같은 흐름에 대응한 것이다. 이처럼 당대 화가들이 남긴 우리 금강산의 멋과 혼, 그 실체를 만나는 날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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