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지난주 2018학년도 수능성적이 발표됐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이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좋은 대학에 진학하길 바란다. 과외를 시키고 학원을 다니게 했다고 부모로서 아이의 교육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 수능은 한순간의 사교육으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100m 달리기가 아니다. 꾸준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42.195㎞를 달려야 하는 마라톤과 같다. 아이의 수능 점수를 보고 지난 12년간 부모로서 역할을 돌아보는 것이 우선이다.

학부모 대부분이 “아이들의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어지고 있다”고 푸념한다. 국·영·수 과외뿐만 아니라 피아노, 미술, 태권도, 컴퓨터, 체육수행평가 사교육비로 최하 50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지출한다. 엄마들은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아이들의 사교육에 매달린다.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의 가장 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그 누구의 탓도 아닌 바로 부모의 욕심 탓이다.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다른 아이에 비해 뒤처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조급증이 문제다. 옆집 아이가 여러 개의 학원을 다닌다고 ‘혹시 내 아이가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강박증으로 아이의 적성과 생각을 무시하고 사교육으로 내몬다. 너무 단기적인 성과에만 매달린다. 심지어 공부가 마라톤이라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꾸준히 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알면서도 금세 10㎞ 지점의 속력이 뒤처진다고 아이를 윽박지른다. 아이는 부모의 성화에 오버 페이스를 하다 결국 마라톤 자체를 포기하고 만다.

자기주도적 학습이 아닌 사교육을 통한 단기적인 성적향상은 자기 실력이 되기 힘들다. 학원에서는 기출문제, 예상문제 등을 통해 시험을 잘 보고 정답을 잘 고르는 요령을 가르친다. 아이들의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학원이 유지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하는 부모의 조급증에 맞추기 위한 땜질식 대응을 할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은 개념과 원리가 충분히 이해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원에서 요약해준 정보를 주입하는 식으로 공부해 응용력과 문제해결력이 떨어진다. 똑같은 유형의 어려운 문제는 기계적으로 풀면서, 쉽지만 기본 유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풀 엄두를 못 낸다. 한마디로 자기 지식 없이 남의 지식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사교육이 전부가 아닌 이유다.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껴 공부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다. 초등학교부터 사교육에 의지해 공부한 탓에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고등학생이 돼서도 터득하지 못한다. 학원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공부의 방향조차 설정하지 못한다. 심지어 대학생이 돼서도 혼자 공부하지 못하고 학원에 의지한다.

사교육으로 선행학습을 한 아이들은 정작 공부를 해야 할 학교에서는 자만해 수업에 소홀하고 집중하지 않는다.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 대부분이 등 떠밀려 오다 보니 공부보다는 이성교제와 군것질로 시간만 때우다 집으로 간다. 전교생 300여명이 다 사교육을 받아도 석차가 1등에서 300등까지 나뉜다. 사교육이 공부를 잘하는 비법이라면 학원생 모두가 1등이나 1등 성적에 버금가는 성적을 올려야 맞는다. 사교육이 아이들의 성적향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교수업 시간에 집중해 공부하고 스스로 예습, 복습을 하는 자기주도적 학습 습관이다. 사교육이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얻는 비결이 아님을 부모들이 알고 느껴야 한다. ‘사교육을 시키면 성적이 향상되겠지’ 하는 맹목적인 생각을 버리고 아이의 학교생활과 교우관계를 살펴보고 학습태도를 바로잡아줘야 한다. 단기적인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아이의 먼 장래를 내다보고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기르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다.

무조건 사교육이 불필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자기주도 학습을 실천하며 더 깊은 공부를 하고자 하는 아이는 사교육이 필요하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스스로 공부할 줄 모르는 아이는 100m 달리기 같은 학교 시험에서 우등생이 될지 모르지만 마라톤과 같은 인생의 경주에서는 스스로 해결하고 이겨 나가는 방법을 찾지 못해 결국 낙오자로 전락한다. 아이들에게 정말로 가르쳐야 할 것은 인생을 살면서 부딪치고 겪게 되는 수많은 문제들에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현명함과 독립심이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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