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전국의 요양병원 중증노인 환자 간병을 언제까지 외국인 간병사들에게 맡겨놓을 건가요?”

중국 조선족들이 ‘대세’인 요양병원 환자 간병 일에 나섰다. 독한 마음 갖고. 하지만 반년 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50대 주부 P씨의 말이었다. 24시간 종일근무제에 따른 체력 부담이 가장 견뎌내기 힘들었다고 한다. 필자가 취재한 P씨. 그는 대부분 여성들처럼 30대까지는 직장인이었다. 그러다 출산과 자녀 양육 등으로 ‘경력단절녀’가 됐다. 어느덧 중년, 취업하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그러던 중 남편이 실직을 했고, 생활비 문제가 절실했다. 딱히 취업할 데가 없었다. 고졸 학력에 경리 직원 근무경력의 50대를 받아주는 회사가 없었다. 동네 마트에서 캐쉬어로 근무해봤다. 그러나 급여 수준이 P씨 가정의 한 달 생활비에 턱없이 부족했다.

남다른 봉사심이 발휘돼야 하는 간호·간병에 젊을 때부터 관심이 많은 P씨였다.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에 응시하려고 여성인력개발센터를 찾아 재취업 프로그램을 수강했다. 하지만 두 아이 학비 때문에 쓸 돈이 급했다.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센터 프로그램 동료 수강자 권유로 사설 간병인협회에 연락이 닿아 간병인으로 취직했다. P씨는 일주일가량 기초교육을 받은 뒤 요양병원 5인실에 투입됐다. 간병인 업무는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의 식사·투약 및 보행 보조, 목욕·대소변 처리, 재활운동 도우미, 휠체어 밀어주기, 환자와 간호사실 사이 의사소통 도우미 등이었다. 벌이는 쏠쏠했다. 300만원 조금 넘는 금액이 매월 매월 통장에 입금됐다. 몇 년만 참고 일하면 저축액이 제법 불어나 남부럽지 않을 것 같았다. 자상한 마음씨로 환자들의 손과 발이 되는 일을 도맡자 병원에서는 진심어린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어렵사리 시작한 간병인 일을 최근 그만뒀다. 그는 왜 일을 포기해야 했을까. 첫째, 하루에도 몇 번씩 악취 진동하는 환자의 배변을 처리해야 하는 3D업종의 애환, 둘째, 오죽 할 것 없어 한국여성이 힘든 간병인 일까지 하느냐는 식으로 바라보는 외국인 간병인들의 시선, 셋째, 24시간 근무제에 따른 심신의 피로축적 등이 이유였다. 가장 힘든 게 교대 없는 종일 근무였다고 그는 털어놨다. 요양병원에는 통증 때문에 제대로 취침을 못하고 고통받는 환자, 밤새 소리지르거나 대변을 집어던지는 등 ‘사고치는’ 치매 환자가 많다. 이로 인해 힘들고 열악하기 짝이 없는 야간 근무가 나날이 그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했다. 밤에 늘 자는 둥 마는 둥 가수면상태로 있다 보니 온 종일 정신이 몽롱했다. 육체는 피로해 휴식을 원하는데 뇌는 전원 코드 꽂힌 전자제품처럼 계속 켜져 있었던 셈. 그러다보니 졸음이 밀려와 제대로 간호·간병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대로 계속 일하면 수명이 급격히 단축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주부로서 남편과 자식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미안함도 컸는데 모처럼 얻은 일자리라고 막무가내로 밀고나갈 수만은 없었다는 것. 필자도 얘기를 듣고 보니 일반여성이라면 누구라도 요양병원 간병인으로 오래 버티기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요양병원 간병인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외국인 간병인과 소통이 안 돼 마찰이 빚어지기 일쑤인 현실. 치매·중증환자에 대한 의료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서도, 일하고 싶고 또한 일해야 하는 경단녀 주부들의 일자리 제공을 위해서도 간병환경이 바뀌어야 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조선족 중국인들 대신 한국인들이 근무할 수 있도록 근무여건을 개선할 수 없는가. 24시간 근무제를 최소한 2교대, 3교대 근무제로 왜 바꾸지 못하는가. 값싼 외국인 인력을 쓰지 않으면 수지가 맞지 않는 요양병원의 경영난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전액 환자가 부담하는 간병비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직접 감당해봐야 안다. 하루속히 건강보험을 급여화하고 고학력 여성인력에 대한 처우를 감안, 간병비를 현실에 맞게 상향조정해 가정주부 요양보호사들이 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 고령남성입원환자들이 증가하고 있으므로 한국인 남성 인력의 간병인 취업도 적극 장려해야 한다.

‘문재인 케어’ 목록에 간병비 건강보험 급여화가 적시돼 있다. 그러나 정부는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에만 너무 기대를 걸고 있다. 지금의 전국 간호사 인력으로는 제대로 된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에 턱도 없이 모자란다. 결국 간호조무사 등을 대거 활용할 수밖에 없겠지만 고령인구 급증 추세를 고려하면 아무래도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상당수 외국인 간병인들은 비전문성·무성의·폭력 등으로 의료서비스 자질논란이 끊임없다. 중증노인입원환자와 보호자들의 불편·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정식 간호·간병교육을 받고 국가자격시험을 통과한 요양보호사 위주로 요양병원 외국인 간병인들을 교체하는 조치에 서둘러 나서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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